이 기사는 2025년 12월 14일 14시 57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홈플러스의 회생 전 인수합병(M&A)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이대로라면 청산 가능성이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회생계획안 인가 전 M&A가 성사되지 못하면 법원은 청산 및 폐업같은 급진적인 선택지를 검토해야 한다. 현실화한다면 홈플러스 및 협력사 임직원들은 거리에 나앉게 될 공산이 크다.
이런 가운데 홈플러스의 주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에 시선이 쏠린다. 메리츠는 홈플러스에 1조2000억원을 빌려준 채권자임에도 회생 과정에서 한발 물러나 관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메리츠가 나서지 않는 이유가 최악의 경우 홈플러스가 파산하더라도 원금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국내외 여러 선례처럼 채무자 MBK파트너스와 함께 회생 구조를 짤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것이라며, 메리츠금융그룹 또한 더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반응이 일각에서는 나온다.
◇ 1.2조 빌려준 주 채권자... 2500억은 이미 회수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오는 29일로 연장했다. 이번이 다섯번째 연장이다. 다만 29일까지 원매자를 찾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기한이 또 한 번 연장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NH농협이 직접 나서서 인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농협의 반발이 워낙 커 실현될 확률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최근에는 구조조정 전문회사 유암코 등판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인적 구조조정 없이 유암코가 떠안으면 마찬가지로 부실을 키울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청산’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기간 내 회생계획안이 제출되지 않거나 관계인집회에서 부결되는 경우 법원은 인가 전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린다. 회생이 폐지돼 파산으로 넘어가면, 법원이 파산관재인을 선임하고 관재인이 회사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배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메리츠의 권한은 절대적으로 크다. 관계인집회에서 회생계획안이 인가되려면 회생담보권자 4분의 3 이상, 회생채권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즉 원칙적으로 메리츠가 반대하면 홈플러스의 회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메리츠가 홈플러스의 최대 채권자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5월 메리츠증권·메리츠화재·메리츠캐피탈은 홈플러스와 1조2166억원 규모 리파이낸싱(재융자) 계약을 체결했다. 그 과정에서 62개 점포를 신탁 담보로 확보해 놨기 때문에, 해당 점포들에 대한 처분권을 메리츠가 갖고 있는 구조다.
신탁재산은 위탁기업의 소유가 아니라서 홈플러스 금융채무가 동결되는 회생 절차 중에도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하면 담보신탁권자인 메리츠가 원칙적으로는 담보권을 실행할 수 있다. 홈플러스의 담보채권(CP 포함) 총액 2조1000억원 가운데 약 60%가 메리츠의 몫인 셈이다.
메리츠는 홈플러스 사태가 발발하고 얼마 동안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뼈를 깎는 자구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안이 정치·사회적 문제로 비화한 이후부터는 말을 아껴왔다.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 중 하나임에도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겠다는 입장이다.
◇ 메리츠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없어”
전문가들은 홈플러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메리츠가 지금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표채권자 지위를 갖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나 만기 연장, 더 나아가 채무의 출자전환, 인가 전 M&A 구조 설계 참여 등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제외하고 회생 작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채권자가 거의 없지만, 해외는 다르다. 미국의 백화점 체인 JC페니의 경우 2020년 파산보호 를 신청했는데, 담보 채권단인 은행과 펀드들이 사이먼프로퍼티·브룩필드와 손잡고 직접 구조조정 방안을 설계한 바 있다. 매장 운영 자산은 사이먼·브룩필드 컨소시엄에 넘기고 점포 부동산은 채권단의 부동산 회사에 귀속시키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했다. 그 덕에 JC페니는 청산을 피하고 상당수 점포를 유지할 수 있었고, 채권단의 변제율도 청산 시와 비교해 높았다.
니만마커스 역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파산보호에 들어갔는데, 주요 채권자들이 스폰서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채권단은 회생법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전조정(pre-pack) 계획을 수립하고 55억달러의 부채 중 40억달러 이상을 탕감하고 연 2억달러 수준의 이자 비용을 줄이는 재무구조 개편안에 합의했다. 채권단은 6억달러 이상의 DIP 대출을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 채권을 지분으로 전환, 니만마커스의 대주주가 된 바 있다.
IB 업계 및 법조계에서는 홈플러스의 주채권자인 메리츠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사태를 계속 관망하고 있는 데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고 진단한다.
가장 큰 이유는 홈플러스가 파산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더라도 원금 회수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홈플러스의 담보 평가액은 2조8174억원으로 산정됐으며 메리츠는 이미 원리금 가운데 2561억원을 회수한 상태다.
통상 회생절차에서는 채무자회생법 제58조에 의해 담보권 실행이 제한된다. 그러나 담보신탁 재산은 수탁자 명의로 분리돼 회생절차의 조정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해석이 우세해 계약상 디폴트 발생 시 수탁자 처분을 통한 담보 회수 여지가 크다.
IB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는 홈플러스 회생에서 ‘담보가 탄탄한 고수익 대출자’의 포지션을 갖고 있다”며 “회사 자체를 살려야만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홈플러스의 ‘자구안’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도 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회생 과정이 더 답답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메리츠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메리츠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결국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수한다는 얘기일 텐데 이는 주주들에 대한 배임 가능성이 있다”면서 “메리츠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메리츠가 출자 전환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마트 업황의 악화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회생 변호사는 “성장성이 높은 업종이라면 모를까, 홈플러스는 출자전환을 해서 대주주로 올라서더라도 사업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대형마트”라며 “채권자 입장에선 주식으로 바꾸더라도 그 주식이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MBK파트너스의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회생 전문 변호사는 “대주주가 상당 금액을 추가로 출자하는 등 희생을 감수한다면 몰라도, 현 상황에서 채권자가 적극적으로 회사를 살리겠다고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며 “양측의 감정의 골이 너무 깊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