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자산운용.

이 기사는 2025년 12월 8일 15시 38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중국 출신 장레이(张磊) 대표가 설립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서 최고가를 제시하며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이지스자산운용 우선협상대상자는 곧 발표될 예정인데, 힐하우스인베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힐하우스인베는 장 대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한 점을 근거로 중국계 PE가 아니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중국계로 분류할 수 있다.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국내 대형 하우스가 중국계 자본에 넘어간다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운용 경영권 매각 본입찰에 참여한 힐하우스인베는 인수 희망가로 약 1조1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전해진다. 본입찰에서 흥국생명은 약 1조500억원, 한화생명은 9000억원대 중후반 수준의 가격을 제시했다.

당초 업계에선 최고가를 적어낸 흥국생명과 자본 여력·규제 대응 역량을 갖춘 한화생명이 2파전을 벌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힐하우스인베가 가격 우위를 확보하면서 판세가 바뀌었다. 국내 기업과 해외 사모펀드 간 대립 구도가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힐하우스인베는 중국 허난성 출신으로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한 장 대표가 설립한 운용사다. 장 대표는 중국 인민대에서 국제금융을 공부한 뒤 예일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치고, 예일대 기금을 종잣돈으로 2005년 힐하우스를 창립했다. 텐센트·징둥닷컴 등 중국 빅테크 투자로 성장한 만큼 글로벌 자금과 함께 중국 자본도 상당 부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힐하우스는 국내에서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컬리, 크래프톤 등 굵직한 투자에 참여했다. 다만 한국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이 금융회사라 금융위원회로부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점에서 업계는 이번 딜의 성패에 주목한다. 우리 국민의 노후 자금을 관리한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지스운용은 2010년대 초 독립계 운용사로 출발해 업계 1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공제회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수탁해 왔다. 이지스운용의 운용자산(AUM)은 약 67조원에 달한다. 중국계 PE가 이지스운용의 새 주인이 될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충돌, 자본 유출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사한 논란은 올해 초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롯데렌탈 인수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어피니티의 창립자인 KY 탕 회장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화교)이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서류에 펀드의 주요 거점이 홍콩 주소로 기재되는 등 ‘중화권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면서다.

어피니티가 롯데렌탈에 앞서 SK렌터카를 인수, 국내 렌터카시장을 장악할 것이란 점 때문에 우려는 증폭됐다. 롯데렌탈과 SK렌터카는 국내 렌터카업계 1, 2위 회사다.

당시 어피니티는 “우리는 중국계나 홍콩계 펀드가 아닌 글로벌 PEF”라고 부인했고,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힐하우스 또한 ‘중국색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힐하우스 홈페이지에는 ‘2005년 아시아에서 설립된 투자사’라는 표현만 적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1월 장 레이와 힐하우스를 다룬 기사에서 “힐하우스는 중국 직원을 줄이고, 웹사이트에서 중국에 대한 명시적 언급을 상당 부분 삭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모펀드의 국적을 구분하는 것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기술 유출 이슈 등을 계기로 중국계 자본에 대해 거리감을 두려는 국내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첨단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 투자 라운드에 중국 펀드가 참여하려 했지만, 전략적 투자자(SI)가 반대해 무산된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