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고채 금리가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채권 발행 시장에도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연기하거나 높은 금리로 발행하고 있다. 내년에도 발행 부담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으로 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7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차를 뜻하는 크레딧 스프레드(무보증·3년물·신용등급 AA- 기준)는 올해 10월 말 40.6bp(1bp=0.01%포인트)에서 지난 4일 기준 44.9bp로 약 한 달 동안 4.3bp 확대됐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30.9bp 오르는 사이 AA- 등급의 무보증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3.50%에 육박했다. 최근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자 시장에서 회사채에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행이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입장을 시사하면서 시장의 기준 금리 인하 기대감은 축소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2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은의 공식 입장은 통화 완화 사이클 유지라면서도 “금리 인하의 규모와 시기, 심지어 방향 전환 여부까지 우리가 보게 될 새로운 데이터에 달려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에 대해 “상향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매파적 신호로 해석됐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 금리를 연 2.50%로 유지하면서 통화정책방향 의결문 가운데 ‘인하 기조’를 ‘인하 가능성’으로, 추가 인하 ‘시기’를 ‘여부’로 각각 조정했다. 시장은 이를 매파적으로 받아들였고 국고채 금리는 급등했다.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자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크게 올랐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올해 내내 강세 흐름을 이어갔던 크레딧(신용 채권) 시장이 연말에 복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다”며 크레딧 시장이 예기치 않게 약세로 돌아서게 된 원인으로 “시장 금리 급등에 따른 채권 시장 변동성 확대”라고 짚었다.
이 여파로 4분기 회사채 발행이 크게 감소했다. 4분기 발행액은 지난 4일까지 23조949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30% 감소했다.
발행액 감소는 4분기 들어 금리가 오르면서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일부 기업의 경우 아예 발행 일정을 연기하거나 개별 민간 채권 평가회사의 평균 금리(민평 금리) 대비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일례로 신용 등급 AAA의 SK텔레콤은 내부적으로 회사채 발행을 검토하다가 잠정 중단했고, AA등급의 KCC글라스 본래 이달 중순쯤 3년물을 1000억원 규모로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내년 상반기로 연기했다.
SK온(A+)은 지난달 진행한 수요 예측에서 민평 금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회사채 발행 목표액 1000억원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KT(AAA)가 지난달 3·5·10·20년 만기물 전 구간에서 민평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조달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4분기 들어 채권 시장의 투자 심리가 악화한 상황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모채 시장에 한파가 찾아오면서 일부 기업은 신종자본증권 등 사모채나 단기 자금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영구 또는 연장 가능한 30년 만기에 5년 콜옵션 조건 등으로 발행되는 채권으로, 최근 롯데건설이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지난 2일에는 CJ CGV가 250억원 규모의 6개월물 기업어음(CP)을 발행하는 등 단기 자금 시장을 노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세계국채지수(WBGI) 편입이 수급 불안을 완화할 재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은 우리나라 국고채가 WBGI에 편입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내년 4∼11월 약 80조원 규모로 국채를 매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11월 들어 기준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국채 금리뿐 아니라 CD(양도성 예금증서) 및 CP 등 단기 금리도 빠르게 상승했다”면서 그러나 “연말 채권 자금 유출과 북 클로징(장부 마감)은 거울과 같이 연초 채권 자금 유입과 북 빌딩(수요 예측)과 대칭을 이룬다”고 말했다.
여기에 증권사의 발행어음 확대를 통한 회사채 투자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연구원은 “증권사의 발행어음 시장은 약 45조원 규모로 매년 15%씩 빠르게 성장했으며, 추가 증권사 선정을 통해 향후 발행어음 시장 규모는 약 10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금융시장은 기대하고 있다”면서 가장 큰 수혜는 A등급 이하 회사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