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 중 실무 수습 기관을 배정받지 못한 ‘미지정 회계사’가 급증한 데 이어 내년에도 이 추세가 꺾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합격자들 사이에선 회계법인 대신 일반 기업 취업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움직임까지 번지고 있다.
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내년도 미지정 회계사가 누적 1000여명에 달할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미지정 회계사는 공인회계사(CPA)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정식 회계사로 활동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실무수습 기관 배정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말한다.
한국회계학회 등에 따르면 올해 합격자 1200명 중 10월 22일 기준 수습기관에 등록된 인원은 338명(28%)에 불과하다. 지난해 합격자 중에서 수습기관을 못 찾은 합격자는 114명다. 업계에서는 채용 한파가 올해 수준으로 이어질 경우 내년 누적 미지정 회계사가 1000명을 훌쩍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공인회계사 선발인원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한 청년 회계사는 “올해 합격자들 상당수가 수습 기관을 지정받지 못했다”면서 “내년에도 1150명의 합격자가 나오면 누적된 미지정 회계사가 1000여 명에 육박하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인원들 중에서는 사기업 취업을 고려하는 이들도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미지정 회계사 500여명이 모여있는 단체 채팅방이 있는데 여기서 매일 은행이나 사기업 등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연차 현직 회계사들도 분위기도 뒤숭숭하긴 마찬가지다. 2023년 취업한 회계사는 “내가 들어올 땐 법인들이 모셔갔는데, 지금은 같은 학교 동기들이 합격해도 일자리가 없다”며 “거의 다 미지정 회계사”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회계사는 “우리도 퇴직하고 싶어도 자리가 안 나서 못 나간다”며 “윗선들만 인건비 줄었다고 좋아하고, 사무실은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근본 원인은 금융위원회가 회계사 공급을 대폭 늘린 데 있다.
금융위는 2020~2023년까지 최소 선발 인원을 1100명으로 유지하다가, 감사원이 “공공기관 등 비(非)회계법인 회계사 부족”을 지적하자 지난해 1250명으로 150명이나 늘렸다.
결과는 대규모 미지정 사태였다. 금융위는 뒤늦게 올해 1200명, 내년 1150명으로 각각 50명씩만 줄이는 ‘미봉책’을 내놨지만, 이미 쌓인 미지정 인원과 신규 합격자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전규안 숭실대 교수는 “회계법인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도 많은 사람을 뽑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회계업계 업황 악화와 AI 기술 발달까지 겹치면서 인력 수요 구조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저가수임 경쟁에 인건비도 빠듯한데, 굳이 사람을 뽑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범준 카톨릭대 교수는 “회계법인들이 지금 AI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며 “1~3년차가 하던 단순·반복 업무는 AI에 시키면 된다. 미숙련 주니어 수요는 구조적으로 감소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 합격자는 “회계사 선배들이 ‘1년차는 가르쳐도 실수하는데, AI는 안 가르쳐도 실수를 안 한다. 그래서 1년차를 왜 뽑냐’는 거다”라며 “웃자고 한 말인데 전혀 웃기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회계사들도 집단 행동에 나선다. 선발인원 정상화 및 수습제도 개선을 위한 3만 공인회계사 궐기대회 준비위원회는 매주 월요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출근길 집회를 실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