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국내 중소기업들의 기부액은 8년 사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단순 금액만 따지면 대기업에 못 미치지만, 같은 기간 대기업 기부가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은 꾸준히 나눔을 늘려나간 것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가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자산 규모 500억원 미만)의 기부액은 2015년 2770억원에서 2023년 5150억원으로 86% 증가했다. 대기업(자산 규모 10조원 이상)의 경우, 기부액이 1조5300억원에서 1조4840억원으로 3% 줄었다. 모금회 관계자는 “사업의 불안정성이 더 큰 중소기업에서 역설적으로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하는 추세”라고 했다.
실제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인천탁주, 오토젠, 빌라 드 아모르 등 중소기업 3곳의 대표도 “위기 때마다 회사를 살려준 지역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에 기부를 결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3곳 모두 1억원 이상 기부한 중견·중소기업 모임인 ‘나눔명문기업’에 가입돼 있다.
정규성(68) 인천탁주 회장은 “2010년 기부를 시작한 뒤부터 회사가 망할 지경까진 가지 않더라”며 “직원 월급도 올려주고, 설비 투자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1974년 설립된 인천탁주는 3대째 이어져온 인천의 탁주 제조사다. 현재 연매출은 100억여 원이고 직원 수는 30명이다. 이곳은 1990년대 말부터 10년 남짓 적자에 시달렸다. 정 회장은 “더는 못 버티겠다고 체념하던 2010년에 국내에 막걸리 붐이 일면서 갑자기 매출이 올랐다”며 “회사를 살려준 인천 시민들에게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들어 그해부터 바로 기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인천탁주의 주력 상품인 ‘소성주’는 인천 지역에서 90% 이상 팔린다.
인천탁주는 2010년부터 매년 두 차례 인천의 한 부모 가정, 소년소녀 가장 등에 쌀 700~800㎏을 기부했고, 지역의 독거·저소득 할머니와 이주 여성에게 1인당 월 50만~100만원씩 생활비를 지급하는 ‘여성 더 드림’ 사업을 해왔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매년 평균 1억원씩, 지난 15년간 총 15억43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지회 등에 기부했다. 정 회장은 사랑의열매에 1억원 이상을 기부한 개인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서울의 자동차 부품사인 오토젠 조홍신(52) 대표 역시 인터뷰에서 “사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며 “(IMF 외환 위기로) 납품을 하던 대우자동차가 2000년 부도가 났고, 2009년 GM 파산과 2009년과 2020년엔 쌍용차 법정관리까지 겪었다”고 했다. 조 대표는 “당시 직원들이 몇 년간 보너스도 받지 못하는 고통을 참아주지 않았다면 그 위기를 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업의 버팀목은 직원 및 그 가족이 속한 지역사회라는 걸 그때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오토젠 설립자인 조용선 전 회장이고, 모친은 서울 사랑의열매 회장을 지낸 이연배 회장이다.
1975년 설립된 오토젠은 선연장학재단을 설립해 2009년부터 지금까지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과 고등학생 총 267명에게 5억6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여기에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 등을 합해 지금까지 총 7억3500만원 이상을 기부했다. 오토젠의 연매출은 인도 공장을 포함해 1000억원이고 임직원 수는 270명에 달한다. 조 대표뿐 아니라 부모님, 장녀까지 가족 4명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빌라 드 아모르는 매출 100억여 원에 직원이 25명 정도인 강원도 원주의 웨딩 업체다. 규모는 작지만, 강원도 제1호 ‘나눔명문기업’(2019년 가입)이기도 하다. 주로 웨딩홀을 활용해 공헌 활동을 한다. 경북 안동 출신인 김종태(58) 회장이 지난 2005년 어머니의 고향인 원주에서 설립했는데, 바로 2006년부터 매년 어버이날에 원주 관내 노인 1000여 명을 초청해 경로 잔치를 열고 있다. 연말엔 원주의 사회복지사 등 소외 계층을 돌보는 150~200명을 초청하기도 한다. 지역 고등학생과 대학생 장학금, 독거 노인 난방비 지원 등을 합쳐 2004년부터 지금까지 10억원을 기부했다.
김 회장은 “어린 시절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라서, 저의 1억원이 어려운 이웃에겐 10억원 이상의 가치가 된다는 걸 알고 있다”며 “코로나 등으로 사업이 힘들 때 일어설 수 있게 해준 지역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김 회장의 권유로 이 모임에 가입한 원주 기업인만 10명에 이른다.
☞나눔명문기업
사랑의열매가 대한민국 나눔 문화를 이끌고 기업 사회 공헌의 새 역할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2019년 만든 ‘고액 기부 중견·중소기업’ 모임. 최초 2000만원 이상을 기부하고, 5년 내 1억원 이상 기부를 약정한다. 현재 총 687곳이 가입돼 있다.
※공동기획: 조선일보사·사랑의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
※문의: 080-89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