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 덕분에 건국 50년만에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김 대통령은 국가경제가 달러 부족으로 망가진 책임을 전임자 탓으로 돌리고, 외환위기 극복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조기상환을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해외의 교포나 투자자에게 달러를 한국으로 가져와달라고 호소했다. 정부 뿐 아니라 지자체, 공기업, 금융회사도 외자 유치를 위해 해외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재미교포 사업가 K씨가 전북은행에 투자를 한 것도 이 때였다. 1999년 유종근 전라북도 도지사는 전북은행 등 전북 소재 기업들과 함께 뉴욕에서 투자 유치 행사를 개최했다.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던 행사 관계자는 K씨에게 전북은행에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K씨는 애국하는 마음에서 1억원을 투자하기로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K씨는 한국의 지인을 통해 전북은행이 알려준 전북은행 명의 계좌로 1억원을 송금했다. 이후 전북은행 직원이 미국으로 전화를 걸어 1억원 중 580만원만 K씨 소유의 전북은행 신주인수권부사채에 배정됐다고 알려줬다. 나머지 돈은 돌려받았다. 몇 년 뒤 K씨가 서울을 방문하자 투자설명회 당시 뉴욕에서 만났던 전북은행장이 “외자 유치에 협조해 줘서 고맙다”며 호텔 식당으로 초대했다.
K씨는 이후 미국에서 사업에 전념하느라 이 사항을 더 이상 챙기지 못했다. 전북은행이 자신의 채권과 관련 서류 등을 잘 보관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채권의 만기 상환이나 신주 인수 여부를 묻는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26년이 흘렀다. 사업에서 은퇴한 K씨는 지난 10월 하순 한국을 방문해 투자금을 찾아나섰다. 필자가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관련 금융기관들이 “너무 옛날 일이라 찾기 어렵다”며 발뺌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① 전북은행
K씨는 먼저 전북은행과 접촉했다. 전북은행 명의의 은행 계좌로 투자금을 송금했을 뿐 아니라, 1999년 투자 직후에 전북은행 직원이 미국으로 전화를 걸어와 K씨 명의 채권의 존재를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전북은행의 답변은 K씨의 예상과 달랐다. 은행 내부에 해당 채권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은행 내외부의 다른 자료를 며칠간 찾아보더니 그 채권은 1999년 2월에 발행됐으며 2014년에 만기가 도래해 모두 정리됐다고 알려왔다. 다만 개별 소유자의 매입과 상환 내역은 채권 발행 주간사였던 동원증권(현재의 한국투자증권)이 갖고 있으니 그쪽에 문의해보라고 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서 휴면 주식이나 채권을 찾아주는 운동을 하고 있으니 그쪽에도 접촉해보라고 조언했다. 증권사가 주식이나 채권을 중개할 때에는 고객 보호를 위해 주식이나 채권 실물을 제3자인 한국예탁결제원에 맡기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K씨는 “투자 직후에 전북은행 직원과 여러차례 통화했던 내용을 돌이켜보면 전북은행이 채권 발행의 모든 작업을 직접 주도했었다”며 전북은행의 해명에 의문을 표시했다.
② 한국예탁결제원
K씨는 전북은행의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차선책으로 한국예탁결제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예탁결제원도 고개를 저었다. 어떤 발행 주간사가 어떤 주식이나 채권을 언제 얼마나 발행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어도 특정 채권의 개별 보유자 정보는 K씨가 발행 주간사인 한국투자증권에 물어봐야 한다고 답변했다. 자신들이 보유한 정보도 대략 10년 정도 지나면 폐기하기 때문에 예전 일은 찾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금융기관들은 투자자에게 돌려주지 못한 금융자산은 특별계좌로 별도 관리하기 때문에 주간사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③ 한국투자증권
K씨 채권의 발행 주간사였던 동원증권은 2005년에 한국투자증권과 합병하면서 이름을 한국투자증권으로 바꾸었다. 김남구 당시 동원증권 대표는 한국투자증권의 지주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으로 현재 재직하고 있다. 동원증권의 업무가 현재의 한국투자증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북은행이나 한국예탁결제원의 말을 들어 보면 한국투자증권은 K씨의 투자금 회수에 매우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투자증권은 K씨의 문의에 “합병 이전의 일이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K씨가 2차례 더 독촉했으나 “진척된 사항이 없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이 1999년 2월 전북은행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의 주간사 역할을 했는지, 그 채권을 2014년에 청산했는지, 당시 채권 보유자 명단을 갖고 있는지, 그 명단에 K씨의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 K씨에게 만기 통지를 여러차례 했는지, 만기에 상환하지 못한 자금은 관련 법규나 내규에 따라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등 핵심적인 의문 사항에 대해 완전 벙어리 상태이다.
결국 K씨는 투자금의 행방을 찾지 못한 채 11월 중순에 한국을 떠났다. 그는 “고객이 금융기관을 믿고 돈을 맡기면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고객의 돈을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K씨는 달러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던 김대중 대통령을 믿고 한국에 투자했다. 26년이 지난 지금 이재명 대통령도 외국의 투자자나 해외 교포들에게 김 대통령과 같은 호소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25일 한국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투자유치설명회’를 열고 한국 투자를 부탁했다. 26년 전과 달리 지금의 한국 투자는 안전할까?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대통령의 외자 유치를 뒷받침할만한 안전한 장기투자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