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로스트아크 미디어아트전 '로스트아크 빛의 여정'이 열렸다./뉴스1

이 기사는 2025년 11월 4일 17시 28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게임 ‘로스트아크’ 개발사인 스마일게이트RPG가 투자사와 10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전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스마일게이트RPG의 기업가치가 1년 만에 17조원에서 7조원 수준으로 급락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스마일게이트RPG가 상장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강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어 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투자사 측은 스마일게이트RPG가 상장 의무를 저버려 자사가 큰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지난 2022년 스마일게이트RPG 상장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회사의 적정 기업가치를 약 17조원으로 제시했다. 같은 해 스마일게이트RPG의 상장 대표 주관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듬해 NH투자증권은 상장 착수 과정에서 스마일게이트RPG의 적정 시가총액을 약 7조원으로 내렸다. 1년도 채 안 돼서 몸값이 10조원이나 떨어진 것이다.

증권사들은 상장 주관사로 선정되기 위해 시장가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듬해 10조원이나 하향 조정한 것은 그만큼 증권사가 몸값을 내릴 만한 객관적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일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사실이 현재 진행 중인 스마일게이트RPG와 라이노스자산운용 간 손배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관련 기사☞[단독] 스마일게이트RPG, 라이노스운용에 1000억원 손배소 당해… "200억 투자했으니 상장 추진했어야)

앞서 스마일게이트RPG는 ‘정해진 기한 내 상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23년 11월 미래에셋증권으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법적 원고일 뿐, 실질적 소송 주체는 2017년 12월 20일 전환사채(CB) 형태로 200억원을 투자했던 라이노스자산운용이다.

양측이 소송전을 벌이는 이유는 계약서 속 ‘상장 요건’을 정반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양측은 CB 만기(2023년 12월 20일) 직전 사업연도의 당기순이익이 120억원 이상일 경우 상장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원고 라이노스는 스마일게이트RPG가 충분한 요건을 달성했음에도 상장을 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최소 1000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CB 발행 이후 스마일게이트RPG는 로스트아크의 성공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CB 투자를 받았던 2017년에는 273억원의 적자를 내는 회사였지만, 2022년엔 영업이익이 3641억원에 달했다.

이에 라이노스는 스마일게이트RPG가 계약상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해 상장 추진을 요구했다. 스마일게이트도RPG도 주관사를 미래에셋증권에서 NH투자증권으로 교체하며 상장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장을 추진할 요건이 안 됐다는 게 스마일게이트RPG 측 입장이다.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이 났음에도 1426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기업가치 상승에 따라 파생상품(CB) 평가손실 5357억원이 발생하며 당기순손실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는 CB가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부채로 인식되기 때문에 발생한 딜레마였다.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이 발생했지만 CB 때문에 당기순손실이 났고, 이 때문에 “당기순이익이 120억원 이상일 경우 상장한다”는 조건을 부합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모든 상장사에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적용하고 있으며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도 일반적으로 K-IFRS를 적용받는다.

스마일게이트RPG는 2019년 콜옵션을 행사해 200억원 중 30%를 상환하고 나머지는 CB로 남아있었다. 해당 물량의 공정가치는 2022년 말 기준으로 190억원에 불과했지만, 주식으로 환산할 시 가치가 5357억원에 육박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스마일게이트RPG의 기업가치가 1년 만에 대폭 하락한 것은 그 당시 상장을 추진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다.

2023년에는 글로벌 금리 인상, 시장 유동성 감소, 증시 침체 국면에서 이른바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 기업)’들이 줄줄이 상장 계획을 접는 분위기였다. 한때 기업가치 6조~8조원까지 바라봤던 컬리도 2023년 말 장외 기업가치가 8000억원까지 떨어졌고, 오아시스와 11번가, SSG닷컴 등 조 단위 몸값이 기대됐던 플랫폼 기업들이 잇달아 상장 계획을 접었다.

스마일게이트RPG 측은 그런 시장 환경에서 급락한 기업가치에 상장을 강행하기보다는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스마일게이트RPG와 라이노스는 내년 1월 네번째 변론기일에 맞붙는다. 최근 변론기일은 지난달 2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