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신탁 계약을 통해 간접 취득한 자사주도 소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상장사가 자사주를 직접 취득하는 대신 증권사와 신탁 계약을 통해 간접 취득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방식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신탁 취득 자사주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빠져나갈 구멍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정부나 국회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어 입법 과정에서 고려할 전망이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3일 국회 관계자 등에 따르면 신탁 취득 자사주도 의무 소각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엔 신탁 계약을 통해 간접 취득한 자사주도 소각 대상에 포함됐다. 이강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소각 의무화 대상인 자사주에 ‘자기주식을 취득하기로 하는 신탁업자와의 신탁계약의 체결을 포함한다’고 명시했다.

신탁 취득 자사주를 의무 소각 대상에서 제외할 법적인 근거도 약하다. 직접 취득한 자사주와 신탁 계약을 통한 자사주는 모두 재무제표에서 원칙적으로 동일하게 자본조정 항목의 자사주로 회계처리돼 회사의 자체 보유 자산으로 잡힌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신탁 계약으로 취득한 자사주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소각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서 “의무 소각 대상에서 신탁 취득 자사주를 따로 제외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나 명분이 없다”고 했다.

민주당 코스피 5000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기형 의원 역시 “간접 취득한 자사주를 직접 취득 자사주와 달리 취급할 이유가 있느냐”며 “신탁 회사를 통해 자사주를 관리하는 것이 전체 주주 입장에서 납득이 되는 경영 행태인가”라고 의문을 제시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간접 취득 자사주를 의무 소각 자사주에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은 금융위원회와도 논의해 온 상황”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회사가 자사주를 간접 취득하려 하지 않겠나. 규제 차익이 생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사주 매입 신탁 계약을 장기간 연장해 소각을 회피하는 ‘꼼수’는 가능할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탁 취득 자사주까지 의무 소각 대상이 되면 국회와 금융당국에서 구체적인 유예기간 등을 대통령령이나 법안으로 만들 것”이라며 이를 회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거래소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총 342건의 자사주 취득이 이뤄졌다. 이 중 상장사가 자사주를 직접 취득한 경우는 45%, 신탁 계약을 통해 간접 취득한 경우는 55%였다. 상당수 상장사가 자사주를 간접 취득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상장사가 증권사와 자사주 매입 신탁 계약을 맺으면 증권사는 기업을 대신해서 자사주를 매수한다. 회사가 간접 취득을 선호하는 이유는 신탁 취득이 직접 취득보다 규제가 약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자사주를 직접 취득하면 매입 3개월 뒤 실제로 주식을 얼마나 샀고, 매각이나 소각을 했는지 공시해야 한다. 신탁 취득도 3개월 뒤 결과 보고서를 공시해야 하지만 신탁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추가 공시 의무는 없다. 이 때문에 취득이나 처분 내역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됐다.

한편 민주당이 3차 상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처리하겠다며 입법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