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A씨는 지난 6월, 자신이 모르는 사이 통장에서 5200만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마이너스 대출(700만원)과 예금을 담보로 한 대출(4500만원)이 실행돼 있었고, 즉시 외부 계좌로 빠져나갔다. 경찰이 파악한 결과 사기범들은 A씨의 개인 정보를 몰래 빼낸 후, A씨의 신분증을 위조했다. 이를 이용해 은행 앱에서 대출을 받고, 이체를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을 둘러싼 사기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카드 배송으로 위장해 스마트폰에 악성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한 뒤 돈을 빼내는가 하면, 인공지능(AI) 기술을 동원해 엄마 목소리인 것처럼 속이는 보이스피싱도 등장했다. 올 들어 7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7766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3909억원)의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날로 지능화하는 비대면 금융 사기로부터 피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원은 “소비자가 직접 금융거래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제한하기 위해 8가지 보안 서비스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나도 모르는 계좌 개설 막아라
‘비대면 계좌 개설 안심 차단 서비스’는 계좌 개설을 막아 보이스피싱 등 피해를 최소화한다. 국내 모든 금융사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수시 입출금 계좌가 개설되는 것을 일괄적으로 차단한다. 한 금융회사에서만 신청해도 신청 정보가 한국신용정보원을 통해 공유돼 전 금융권에 적용되다 보니 명의를 도용해 이뤄지는 계좌 개설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여신 거래 안심 차단도 사고 예방에 필요한 서비스다. 신용·담보대출, 카드론 할부·리스 등 모든 여신 관련 금융거래를 일괄 차단한다. 이렇게 되면 제3자가 내 명의로 대출을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두 서비스 모두 금융사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다만 해지는 영업점을 직접 방문해야 할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출금을 방지하려면 ‘지연 이체 서비스’에 가입하는 게 좋다. 창구 거래가 아닌 방식으로 특정인에게 돈을 보낼 경우 최소 3시간이 지나야 받는 사람 계좌에 입금되도록 하는 서비스다. 보이스피싱에 속아서 실행한 이체를 일정 시간 내 취소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가입자 본인 계좌 간 송금이나 사전에 등록한 계좌로의 이체는 즉시 실행되도록 할 수 있다. ‘입금 계좌 지정 서비스’는 미리 지정한 계좌로만 송금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지정하지 않은 계좌로는 1일 100만원 이내의 소액 송금만 가능하다. 이를 통해 피해액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원천적으로 출금 막는 방법도
‘단말기 지정 서비스’는 사전에 등록한 개인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에서만 주요 금융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다. 제3자가 다른 기기에서 무단으로 로그인하거나 이체나 결제를 시도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지정하지 않은 단말기에서는 계좌 조회만 가능하다.
‘해외 IP 차단 서비스’는 해외에서 접속한 IP(인터넷 식별 번호) 주소를 통한 자금 이체나 예금 해지 등을 완전히 차단하는 서비스다. 이를 통해 해외에서의 비인가 거래나 해킹으로 인한 피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이 밖에 금융 사기 피해액을 최대한 줄이려면 ‘비대면 이체 한도 축소 서비스’ 가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본인의 금융거래 규모에 맞게 비대면 이체 한도를 조정하는 서비스다. 보통 은행들은 OTP(한 번만 사용 가능한 일회용 비밀번호) 등 등급이 높은 보안 매체 사용 시 1회 1억원, 1일 5억원 이하로 한도를 설정하는데, 이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는 한도를 더 낮출 수 있다. 당분간 큰돈 이체가 없다면 피해 규모를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서비스 가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 강력한 조치로는 ‘본인 계좌 일괄 지급 정지 서비스’가 있다. 이 서비스는 금융결제원의 계좌정보 통합관리 서비스 웹사이트(payinfo.or.kr)나 모바일 앱(어카운트인포)을 통해 본인 명의로 개설된 모든 금융 계좌를 조회한 뒤, 필요하면 일괄 지급 정지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개인 정보 유출이나 해킹 때문에 피해가 예상되거나 두려울 때는 계좌 일부 또는 전체를 빠르게 동결할 수 있다. 금감원은 “본인의 금융 사기 위험 정도, 비대면 거래 수요 등을 고려해 서비스를 신청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