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에선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에선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U·마이크론) 주가가 뛰면서 두 회사의 시가총액 규모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거품 우려가 한풀 꺾이면서 전 세계 반도체 종목으로 투자 자금이 몰린 덕분이다. 두 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줄 최대 변수 중 하나로 삼성전자가 AI 칩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다시 영향력을 회복할지가 꼽힌다.

SK하이닉스 주식은 12일 오전 10시 15분 코스피시장에서 32만6000원에 거래됐다. 주가가 전날보다 6.2%(1만9000원) 오르면서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6세대 HBM ‘HBM4′ 개발을 마무리하고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는 발표 내용이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밤사이 마이크론 주가도 7.55%(10.57달러) 올랐다. 장중 주가가 156.26달러까지 뛰면서 지난해 6월 기록한 역대 최고가(157.54달러)에 다가서기도 했다.

전날 종가 기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시가총액은 685억달러다.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을 적용하면 233조7000억원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전날 시가총액 223조5000억원을 10조원 이상 앞질렀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4200억원가량 더 컸다.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이날 장중 236조원을 넘어서면서 다시 앞서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마이크론 시가총액이 SK하이닉스를 25조원 넘게 앞질렀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던 측면도 있지만, 반도체 업황이 하락기에 들어섰다는 전망에 SK하이닉스 주가가 부진했던 영향이 컸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AI 칩 핵심 부품인 HBM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잇달아 갈아치웠고, 올해 1분기와 2분기에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D램 점유율(매출 기준) 1위 자리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 주가가 뛰면서 지난 3월부터 마이크론과 시가총액 경쟁을 시작했고, 6월부터는 우세를 점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들어 국내 증시가 조정을 겪으면서 다시 접전 양상으로 변했다.

시장에선 반도체 업황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AI가 학습에서 추론 단계로 넘어가면서 HBM뿐만 아니라 낸드플래시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D램 업황도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면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씨티(Citi)그룹이 전날 마이크론 목표 주가를 150달러에서 175달러로 상향 조정한 것도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수급이 빠듯해지면서 반도체 기업이 가격 결정권을 쥘 수 있다는 이유가 컸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질주에 최대 변수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4를 공급할 수 있을지다. 삼성전자까지 공급망에 합류하면 상대적으로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HBM4의 내부 양산 승인을 통과하고 고객사와의 공급 협의를 위한 샘플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