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다시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NVDA)로 눈을 돌렸다. 시장의 높은 기대치를 다 채워주지 못한 실적과 중국의 자체 인공지능(AI) 칩 자체 개발 소식에 엔비디아 주가가 흔들리자, 저가 매수 기회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최근 2주간(8월 21일~9월 3일·결제일 기준) 엔비디아 주식을 2억3206만달러(약 3234억원)어치 사들였다. 해외 주식 가운데 가장 순매수 규모가 컸다. 2위인 비트마인 이머전 테크놀로지스(BMNR)를 1억2399만달러(약 1728억원) 사들인 것과 비교해도 두 배가량 많다.
서학개미들의 최근 관심 종목은 유나이티드헬스그룹(UNH)이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매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영향이 컸다. 국내 투자자는 지난달 초부터 20일까지 유나이티드헬스그룹 주식을 2억5859만달러(약 3604억원) 규모로 가장 많이 사들였고, 같은 기간 엔비디아 순매수 규모는 378억원어치에 그쳤다.
엔비디아 주가가 지난달 18일(현지시각) 이후 180달러 선을 내주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 꼽혔다. 엔비디아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올해 2분기(5~7월) 실적은 전반적으로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이 부진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對)중국 제재로 H20 칩의 중국 매출이 반영되지 않은 영향도 있었다.
또 엔비디아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중국 알리바바가 자체적으로 차세대 AI 칩을 개발해 시험 중이란 소식이 주가를 끌어내렸다. 미·중 간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중국 시장 내 엔비디아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저점 매수’ 기회로 삼은 서학개미처럼 증권가에선 낙관론이 적지 않다. 엔비디아가 이번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중국 데이터센터 매출을 제외했음에도 견조한 실적과 가이던스(3분기 매출 540억달러)를 제시한 점과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장기 성장 동력인 엔비디아의 블랙웰 플랫폼을 채택하는 추세인 것이 주된 요인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올해 3분기 가이던스는 H20 관련 매출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로, 지정학적 이슈가 해소된다면 20억~50억달러 수준의 추가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며 “중국 시장의 감소분을 상쇄할 만큼의 강한 고객사들의 수요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65개 기관의 엔비디아 목표주가 평균은 206.72달러다. 전날 종가(171.66달러)보다 20.42% 높은 수준이다. 앞서 엔비디아의 2분기 실적 발표 이후에도 번스타인과 JP모건은 각각 목표주가를 225달러, 21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다만 당분간 주가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 백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38~41배로, 과거 밴드 상단에 위치해 매크로(거시 경기 지표) 변수에 따라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럼에도 글로벌 데이터 인프라 투자가 2030년까지 4조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인 점 등 관련 시장 성장세에 대한 수혜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