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참여연대 출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삼성그룹을 정조준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요구에 따라 전임 정부에서 해석한 금감원의 결정을 뒤집고, 삼성생명 회계 처리를 삼성에 불리하게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1일 보험업권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직후 자신을 기다리는 기자들 앞에서 삼성생명 회계 처리에 대해 “방향은 잡은 상태고 시간 끌지 않고, 금감원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진영

3일 금융권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이 원장이 언급한 삼성생명 회계 문제는 삼성생명이 과거 판매했던 유배당 보험의 계약자에게 돌아가야 할 배당을 보험사가 갚아야 할 ‘부채’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가 핵심이다.

지난 2023년 한국은 새로운 보험 관련 국제회계기준(IFRS17)을 도입했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하여 그 처분 이익을 배당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을 경우 유배당 보험 계약자의 배당은 원칙적으로 부채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장부상 삼성생명의 보험 부채가 상당히 감소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또 보험 계약자들의 몫(배당)이 장부에서 사라질 경우 삼성생명은 계약자들의 반발을 사는 등의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들이 있었고, 이복현 당시 원장이 이끌던 금감원은 국제회계기준에 있는 예외 규정을 적용해 삼성전자 주식의 평가손익에 대해서도 부채를 추가 계상하는 방식으로 회계 처리하도록 했다.

예외를 적용할 경우 보험 계약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배당금이 장부에 잡혀 삼성생명은 보험 계약자들의 반발이나 각종 소송 등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금융 당국이 예외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약 8.51%)을 팔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일부 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 지난 2월 삼성전자가 금융 당국의 ‘밸류업 정책(기업 가치 개선)’에 따라 3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율이 올라가게 됐고, 이 경우 금융사(삼성생명)가 보유하는 비금융 계열사(삼성전자)의 지분을 10%가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 금융산업법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진보 성향 인사와 시민 단체들은 삼성생명이 예외적 회계 처리를 적용받기 위해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를 어겼으니, 더 이상 예외를 인정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은 주식 매각은 법 위반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뿐, 어떤 이익을 올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단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찬진 원장이 지난달 취임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삼성생명을 둘러싼 이 같은 회계 논란을 들여다보겠다고 선언했다. 이 원장은 지난 1일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국제회계기준에 맞춰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해 이복현 전임 원장 시절 금감원이 내렸던 예외 적용을 뒤집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이 원장의 이 같은 방침이 삼성 압박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이 원장은 1990년대 참여연대 초기 멤버로 활동하던 시기부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와 회계 이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보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비판한 바 있는데, 금감원이라는 칼을 손에 쥔 만큼 본격적으로 삼성 압박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