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8월 27일 10시 55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개정 법인세법 시행령을 활용해 국내 상장 리츠(REITs·부동산 투자회사)들이 투자 부동산 회계 처리를 기존의 원가 모형에서 공정가치 모형으로 전환하고 나섰다. 투자 부동산의 가치를 장부가 대신 시가로 재무제표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 만큼 자본이 늘면서 부채비율(총부채 ÷ 자본총계)이 하락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27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제이알글로벌리츠의 올해 6월 말 기준 자산은 2조6322억원이다. 지난해 말 2조1465억원보다 22.6%(4857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206억7600만원에서 307억4600만원으로 48.7%(100억7000만원) 뛰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투자 부동산 회계 정책을 원가 모형에서 공정가치 모형으로 전환한 덕분이다. 제이알글로벌리츠의 투자 부동산인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 타워(Finance Tower Complex)의 6월 말 가치를 기존의 원가 모형으로 따져보면 취득 원가(1조9252억원)에서 감가상각누계액(1437억원)을 뺀 1조7815억원이다. 하지만 공정가치 모형에 따라 감정평가를 토대로 한 파이낸스 타워의 가치는 2조1521억원이다. 원가 모형에서 공정가치 모형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자산이 3706억원 늘어나는 효과를 본 셈이다.

6월 말 기준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부채 비율도 원가 모형일 때는 180.4%이지만, 공정 가치 모형을 적용하면서 119.2%로 61.2%포인트 낮아질 수 있었다. 감가상각비가 사라지면서 순이익 증가에 힘을 보탰다.

SK리츠 역시 원가모형에서 공정가치모형으로 전환했다. 6월 말 자산 규모는 5조98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5.3%(6755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243.4%에서 159.8%로 떨어졌다.

SK리츠의 투자 부동산인 SK서린빌딩의 경우 2021년 7월 매입가가 1조30억원이었는데 6월 말 감정평가 결과 공정가치가 1조3149억원으로 매입가 대비 31.1%(3119억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SK에너지 주유소와 SK하이닉스 분당사옥, SK그린캠퍼스 사옥,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반도체 제조 필수 시설, SKC 충무로 사옥 등 전체 투자 부동산 가치도 매입가 4조1780억원에서 공정가치 4조9416억원으로 18.3%(7636억원) 불어났다.

제이알글로벌리츠의 투자 부동산인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 타워(Finance Tower Complex). /제이알글로벌리츠 홈페이지 캡처

그동안 리츠들이 투자 부동산 회계 정책을 원가 모형으로 채택했던 것은 법인세법과 맞물려 있다. 투자 부동산 평가 이익도 ‘배당 가능 이익’으로 잡혔기 때문이다. 부동산투자회사법에 따라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주주에게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는 리츠 특성상 부담이었다.

쉽게 말해 기존에는 투자 부동산의 가치가 100억원 오른 것을 재무제표에 반영하면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데도 배당 가능 이익이 증가한 만큼 리츠들이 배당금을 최소한 90억원 늘려줘야 했다. 공정가치 모형을 적용하면 좋은 부동산에 투자해 평가 이익이 커질수록 배당을 위해 추가로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개정 법인세법 시행령에 따라 투자 부동산 평가 손익이 배당 가능 이익에서 빠지면서 리츠들이 공정가치모형을 택할 수 있게 됐다.

리츠 입장에선 투자 부동산 가격이 처음 샀을 때보다 오르면 자산이 불어나고, 그만큼 부채 비율과 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출 수 있다. 자금 조달이 유리해진다. SK리츠와 제이알글로벌리츠 외에 일부 상장 리츠들도 공정가치모형으로 투자 부동산 회계 기준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는 이유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투자 부동산 공정가치를 반영해 부채 비율과 LTV가 내려가면 그만큼 좋은 신용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자금을 조달할 때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며 “회사채를 비롯한 자금 조달 선택지도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물론 공정가치모형도 위험 요소가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평가 손실이 그대로 재무제표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자산 가치가 줄면서 부채 비율이 오르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차입 여력도 줄어든다.

앞서 신용평가사 한국기업평가도 ‘리츠의 투자 부동산 공정가치모형 적용 영향 모니터링 계획’을 통해 “공정가치모형은 회계상 이익 증가와 배당 여력 확대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며 “리츠별 재무 완충력 확보 및 유지가 핵심”이라고 했다.

리츠가 원가모형에서 공정가치모형으로 전환할 때 투자 부동산의 적정 가치를 매기는 것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리츠업계 관계자는 “투자 부동산 가치를 부풀려 재무구조를 단기간에 개선하려다가, 오히려 더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는 만큼 문자 그대로 ‘공정가치’를 반영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