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않는 회장·부회장 직함을 단 실소유주에게도 분식회계 과징금이 부과된다. 또 고의적인 분식회계와 오랜 기간 이뤄진 부정한 회계 처리는 가중 처벌된다. 금융 당국은 분식회계에 대한 제재 수단으로 형사 처벌을 강화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어, 과징금 부과 등 경제적 제재 중심으로 분식회계 유인을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7일 정례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회계부정 제재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마련한 이번 방안의 핵심은 고의적인 분식회계에 대해 상장사와 책임자가 부담하는 과징금 수위를 대폭 높이는 것이다. 또 회사 대주주가 변경된 경우 이전에 발생한 분식회계를 바로 잡을 경우 처벌을 감면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금융 당국은 회계 부정이 자본시장 활성화를 저해하는 대표적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관련 대책을 마련했다. 특히 고의적 분식회계는 횡령·배임,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사기적 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 행위와도 밀접하게 연계된 경우가 많다. 이날 취임 후 처음 증선위 회의를 주재한 권대영 증선위원장은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재무제표 허위공시 등 회계부정 범죄는 경제적 유인을 박탈하는 수준까지 과징금을 부과하여 엄정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1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석유화학 사업재편 금융권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금융 당국은 분식회계가 발생해도 그동안 처벌되지 않았던 기업 실소유주에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회사의 분식회계 상당수는 월급을 받는 사장보다 회장·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으면서도 월급을 받지 않는 실소유주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을 도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실소유주가 분식회계를 주도했더라도, 이 최종 결정자가 해당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않으면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회사 관계자에 대한 과징금은 회사로부터 받은 금전적 보상을 기준으로 산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 B, C 등 3개 회사가 지분 관계로 얽혀있는 기업집단에서 A와 B회사 대표를 겸직하는 실소유주가 A회사 분식회계를 지시하고도 B회사에서만 월급을 받는다면 지금까지는 처벌할 수 없었다.

당국 관계자는 “실소유주이자 부정 회계 책임자가 분식회계를 통해 횡령·배임한 금액이나 사적으로 빼돌린 금액을 부정행위에 따른 경제적 이익으로 간주해 이를 과징금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열사로부터 받은 보수와 배당도 경제적 이익에 포함된다.

회계부정에 가담했으나 과징금 산정이 어렵거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금전적 보상이 현저히 적은 경우는 자본시장법 등 다른 법령을 참고해 과징금 최저 기준금액(1억원)을 신설해 적용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에는 고의적 분식회계와 여러 해에 걸쳐 이뤄진 분식회계를 가중 처벌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감사자료 위변조, 은폐·조작 등 고의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횡령·배임, 불공정거래 연관 사건과 동일한 최고 수준으로 과징금 금액을 상향한다.

회계부정이 장기간 지속된 경우는 위반 기간에 따라 과징금이 가중된다. 지금은 1년 분식회계를 저지른 경우와 5년 분식회계 한 경우, 과징금 규모에서 차이가 없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오랜 기간 부정한 재무제표를 작성한 회사에 투자하는 경우 피해가 더 크다.

이에 금융 당국은 고의 회계위반에 대해서는 위반기간이 1년을 넘는 경우, 초과하는 1년당 과징금을 30%씩 가중하고, 중과실 회계위반에 대해서는 위반기간이 2년을 넘는 경우, 초과하는 1년당 과징금을 20씩 가중해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대책에 이른바 ‘당근책’도 포함했다. 이미 발생한 분식회계를 적발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대주주가 변경되는 경우인데, 이를 십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대주주 변경에 따라 경영진이 교체된 경우, 새로운 대주주가 과거 분식회계를 점검해 개선하면 이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깎아주거나 아예 부과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인센티브를 통해 새로운 대주주가 과거 분식회계를 숨기거나 덮는 사례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도 회사가 외부 감사인이나 금융감독원에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 무조건 고의 분식회계로 간주된다. 감사 등 내부 감시나 외부 감사인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당국의 재무제표 심사·감리를 발행할 경우 감사인 지정 3년, 대표이사·담당임원 해임 권고, 직무정지 6개월, 회사·임직원 검찰 고발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이날 논의된 방안이 내년 상반기 시행되도록 외부감사법과 시행령 등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