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를 이끌어온 기술주가 또 한 차례 시험대에 올랐다. 바로 인공지능(AI) 관련 ‘거품론’이다. 지금까지 기술주 조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 평가 가치) 부담이 늘면서 버블 우려가 투자 심리에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내 기술 섹터 비중은 34%에 달하는데, 이는 닷컴 버블 정점이던 2000년 3월(33%)과 맞먹는 수준이다.
AI 거품론에 불을 붙인 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 투자자들이 AI에 지나치게 흥분한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MIT 연구진이 “AI 기업의 95%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투자자들의 경계심은 더 커졌다. 이 같은 우려가 확산되며 미국, 유럽, 아시아 증시의 기술주가 일제히 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AI 산업이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테마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돈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먼저 AI가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단 점이 눈길을 끈다. 대신증권 분석에 따르면, AI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 2개 분기 평균 GDP 기여도를 보면 소비는 0.6%포인트에 그친 반면, AI 투자는 1%포인트로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울러 올해 6월 기준 미국의 데이터센터 건설 지출액은 400억달러로, 일반 사무실 건설 지출액(440억달러)에 근접했다. AI 투자가 경제 전반을 견인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책적 지원도 AI 투자 확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 ‘AI 액션플랜’을 발표하며 AI 산업에 대규모 유동성을 투입했다. 이 계획은 AI 규제를 완화하고 혁신을 가속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은 미국과의 관세 합의를 통해 2028년까지 미국 전략 산업 분야에 6000억달러 규모의 민간 투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박현정 대신증권 연구원은 “선별적인 유동성 장세에서 정책 수혜를 입을 테마인 AI, AI 인프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크지만, 여전히 높은 금리와 물가 상승 압력이 남아 있어 (앞으로) 정책과 성장 스토리가 명확한 전략 산업에 자금이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AI 거품론에 불을 붙인 샘 올트먼의 발언도 정확히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AI 산업을 둘러싼 과열 국면을 인정하면서도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버블이 꺼져도 살아남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AI는 경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소위 말하는 스캠 기업은 걸러내고 경제적 해자를 가진 기업을 선별해야 한단 취지다.
AI 투자의 단기 분기점은 한국 시각으로 오는 28일 새벽 나오는 엔비디아(NVDA)의 실적 발표가 될 전망이다. 레이먼드 제임스의 매트 오턴 수석 전략가는 “엔비디아는 AI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리 지표”라며, “S&P500의 수익률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AI 투자 심리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