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던 한국 증시에 제동이 걸렸다. 아시아 주요국 주가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과 달리 코스피지수는 2021년 6월 기록했던 전고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 이재명 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을 시작으로 정책 우려가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날 3151.56으로 장을 마무리했다. 지난 7월 31일 장중 3288.26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새로 쓴 뒤 3100~3200대에서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고 있다.
이와 달리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닛케이225지수)는 전날 장중 4만3876.42까지 오르며 역대 최고가를 다시 한번 경신했다. 대만 자취안(加權)지수도 지난 18일 사상 최고가를 찍었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선전종합지수도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장을 흔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관련한 우려가 한고비를 넘으면서 상승 랠리로 이어졌다.
코스피지수와 다른 아시아 주요국 주가지수의 방향이 바뀐 시점으로 지난 7월 15일이 꼽힌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7월 15일 이후 약 65포인트 하락했는데,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우의 지수기여도는 대략 45포인트였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보면 110포인트 넘는 낙폭을 기록 중이라는 의미다.
7월 15일은 이재명 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의 윤곽이 드러난 날이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는 방안도 이때부터 알려졌다. 7월 31일 공개된 세제 개편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세제 개편안에 담긴 배당소득 분리과세도 최고세율이나 조건 모두 시장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전제로 낮췄던 증권거래세도 높이기로 했다. 또 법인세, 금융권 교육세 등도 줄줄이 인상하기로 했다.
여권(與圈)에선 사용자 범위 확대와 노동쟁의에 대한 손해배상 제한을 골자로 한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2차 개정안도 꺼내 들었다. 특히 노란봉투법을 두고 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그대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코스피 5000 시대’로 요약되는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기대감과 거리가 먼 정책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차라리 신호가 없었으면 모르겠는데, 시장 활성화에 무게를 싣다가 정반대로 움직이니까 더 휘청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식시장 투자자의 실망감은 거래 대금 규모에서 잘 드러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난 6월 코스피시장 하루 평균 거래 규모는 15조1998억원이었다. 지난 7월엔 12조9598억원으로 줄었고, 이달 들어서는 10조6760억원까지 뒷걸음질쳤다.
특히 국내 증시 상승 흐름을 견인했던 외국인 투자자의 ‘사자’ 열기가 식었다. 외국인은 지난 6월엔 코스피시장에서 2조6829억원어치를 순매수했고, 7월에는 6조2669억원 매수 우위를 보였다. 이달 들어선 반대로 4010억원을 순매도했다.
정책 동력이 약해진 가운데 그동안 증시를 주도했던 업종들도 악재를 맞닥뜨리고 있다.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하는 파생상품 품목을 확대하면서 전력기기업종으로 불똥이 튀었고,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불공정 계약’ 논란에 원자력발전 업종이 급락했다. 투자 심리가 약해지면서 부정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를 이끌어온 주도주들이 이번 주 들어 차례로 급락하면서 체감상 지수 하락의 강도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세계 증시가 다시 관망세로 돌아선 만큼 국내 증시도 반등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정해창 대신증권 연구원은 “잭슨홀 미팅을 앞두고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으로 경계 심리를 형성하고 있다”며 “추진 중인 미국·우크라이나·러시아 3자 회담 경과도 시장의 이목이 쏠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사안 모두 영향력이 크지만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며 “증시 관망 심리가 우세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