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비추어 보면 너무 높은 수준입니다. 미국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해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국내 정국이 진정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오면서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근철 SC제일은행 외환운용팀 상무는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분석하고 “개인 투자자들이 환율 추가 상승을 예상하고 달러를 사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지난 1999년 산업은행에 입사한 뒤 바클리은행과 SC제일은행을 거치며 24년째 외환·채권 트레이더로 일하고 있다.
―외환 시장 동향은?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현재 달러당 1430원 수준인데, 달러 강세 추세를 감안해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비추어 보면 다소 높은 수준이라고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 원·달러 환율 평균치는 대략 1200원 정도이다. 환율은 길게 보면 평균치에 회귀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은 균형점에서 많이 이탈한 상태이다.”
―환율 상승 원인은?
“가장 큰 원인은 달러 강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관세를 포함한 미국 우선주의 공약이 실현되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이에 따라 원화·유로화·위안화 등 다른 통화들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되어 있다.
둘째, 국민연금, 서학 개미 등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가 증가하면서 달러 유출이 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한 반면, 미국 주식시장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서학 개미들의 해외 주식 잔액은 1000억달러를 넘는데, 최근 5년 동안 집중적으로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매년 100억~250억달러가 외환시장에서 환전됐다고 추정한다. 한국의 최근 5년간 경상수지 흑자액이 연간 250억~850억달러인 점에 비추어 보면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규모이다. 반면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을 상대적으로 적게 사고 있다.
셋째,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짓기 위해 달러를 많이 갖고 나가고 있다. 트럼프 1기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 때에도 한국 기업들의 미국행이 많았다. 트럼프 2기 정부 때에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내년 초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환율은 어떻게 움직일까?
“전문가마다 전망이 좀 다르다. 트럼프 1기 정부 때를 되돌아 보면 2016년 대통령 당선 직후 공약 실현 기대감에 달러가 7% 정도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2017년 초 취임 후에는 실현되는 정책이 강하지 않다는 판단에 달러가 약세로 돌아섰었다. 2018년 이후 대중국 고율 관세 부과 조치가 본격 시행되면서 달러가 다시 강세를 보인 뒤 그 추세가 이어졌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부과에 맞서 위안화 약세 정책을 폈던 영향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2017년에는 달러가 13% 정도 약세를 보였다가 2018년에는 12% 정도 강세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1기 정부 때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올해 말까지 달러가 강세를 보이다가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는 내년부터는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와 다른 시각도 있다. 트럼프 1기 때에는 대중국 관세 부과 조치가 임기 2년 차에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1기 정부 시절의 경험 덕분에 임기 시작과 동시에 대중국 관세 조치를 취하고 그 영향으로 달러 강세, 원화 약세 현상이 임기 첫해부터 바로 나타날 것이라는 견해다. 개인적으로는 이 견해가 좀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원화 가치가 미국 달러에 어느 정도 연동되어 움직이나?
“과거보다 동조화 정도가 더 강해졌다고 본다. 트럼프 1기 정부 때에는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 시기여서 한국 경제도 나쁘지 않았다. 반면 지금은 반도체 경기 전망이 암울하고 미·중 갈등으로 세계 무역량이 줄면서 한국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의 기준금리보다 낮은 금리 역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금리 역전 현상이 외국 투자 자금의 한국 유출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나, 금리 역전 현상이 길게 이어지면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율을 결정하는 데 결국 두 나라 금리 차가 가장 큰 변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은 상황에서 한국은 경기가 좋지 않아 금리 인하 사이클에 진입했고, 미국은 경기가 좋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멈추고 동결로 가면 한국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비상계엄 사태가 환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트럼프 변수 정도는 아니다. 아직까지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 한국 경제나 외환시장에 산불로 번지지는 않았다. 과거 사례를 볼 때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기에는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약 2% 정도 올랐다가 곧 하락세로 돌아섰다. 당시에는 달러가 약세 추세(원·달러 환율은 하락)였고, 반도체 경기가 좋아서 한국 주식시장으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유입된 측면도 있다. 이에 반해 지금은 반도체 경기가 꺾이는 시기인 데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과거와 다르게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 통화의 영향은?
“유럽이나 중국은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인상으로 무역 규제를 하게 되면 자국 통화의 절하(환율은 상승)나 금리 인하로 대응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이에 반해 일본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때문에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한국의 원화는 일본 엔화보다는 미국의 달러 강세에 맞서는 유럽과 중국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내년도 원·달러 환율은 어떻게 전망하나?
“트럼프 취임 후 무역 정책이 어떻게 실현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공약과는 달리 미국 내 유권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역이나 업종에 국한되어 핀셋 형태로 시행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적고 미국의 금리도 인하되면서 달러는 약세로 돌아설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하향 안정화 된다는 뜻이다. 달러가 약세가 되면 원·달러 환율은 더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원·달러 환율이 이미 상당히 높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면 달러가 강세로 간다고 하더라도 같은 이유로 원·달러 환율의 상승 폭은 달러 강세 폭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에 원·달러 환율이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고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외환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한국의 정부와 민간의 대외 순자산은 1조달러에 이른다. 단순하게 연간 4% 이자 수익이 생긴다고 가정하면 400억달러가 유입된다. 게다가 연간 경상수지 흑자가 900억달러 수준이니, 둘을 합하면 연간 1300억달러가 순유입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의 대외 순자산과 연간 유입액을 갖춘 나라는 외환 투기꾼들이 공격하기 쉽지 않다. 헤지펀드들이 중국 위안화 투기에 실패하는 것은 중국의 외환 보유액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 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비교해 보면 대외 순자산이 많이 늘었고 민간 부문 비율도 높아졌다. 한국의 외환 체력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외환시장은 쏠림 현상이 심하기 때문에 불안 요인이 생기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잘 관리하면 외환 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앞서 말한 것처럼 대외 신인도 유지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본의 유출입을 제한하는 정책에서 순유입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수익 창출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달러의 증가 추세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반대로 달러 유입을 늘려서 순유입을 증가시키는 조치를 더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올해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으로 내년부터 550억달러가 한국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학 개미들의 해외 주식 투자 연간 유출액인 100억~250억달러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규모이다. 이런 큰돈이 지속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국 경제의 매력을 높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자본 유입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외환 거래는 투자 목적이 아닌 실수요 위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율은 언제나 과도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심해지면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균형점으로 돌아오는 회복력이 존재한다. 환율 수준이 과도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부화뇌동하는 거래를 하면 안 된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너무 높고 내년에는 불확실성이 더 커지기 때문에 지금은 달러를 사기보다는 파는 것이 낫다는 견해가 많다. 트럼프 정책이 예상보다 거칠어지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달러가 꼭 필요한 사람은 실수요만큼 분할 매수하고 팔 사람은 분할 매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