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대행해주는 업체인 ‘로코모티브’에는 최근 50곳 넘는 기업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이번 3월 주총에서 회사 측 안건에 동의하는 소액주주들의 표를 모집해 달라”는 요청이다. 작년까지는 3월 주총을 앞두고 대략 20여 기업들이 문의했는데, 올 들어 2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이태성 로코모티브 대표는 “전국적으로 60개 거점에서 모집 요원을 최대 500명까지 동원할 수 있는데, 요즘은 워낙 일이 몰려 10여 기업 정도만 의결권 모집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올 들어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며 경영진과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이는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늘어나면서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모으는 전문 업체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 의결권 모집 전문 업체들은 공격하는 행동주의 펀드나 방어하는 회사 측 모두에게 성능 좋은 ‘칼’이나 ‘방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와 ‘섀도 보팅’ 폐지가 키운 시장
의결권 모집 업체 ‘비사이드코리아’도 이번 주총 시즌에 9개 기업의 주총에 대비해 의결권을 모집 중이다. 작년엔 3곳을 대행했는데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사측을 대리하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소액주주 측 의결권 모집을 돕는다고 한다. 임성철 비사이드코리아 대표는 “올해는 주총에서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이 회사 경영진과 맞붙는 경우가 특히 많아졌다”며 “의결권 모집 시장이 작년 대비 2배는 커진 느낌”이라고 했다.
국내 의결권 모집 시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형성됐다. 업체 서너 곳 정도로 시작한 시장 규모는 2010년대 중반까지 불과 10여 곳으로 좀처럼 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7년 말 섀도 보팅(shadow voting·의결권 대리 행사)이 폐지된 뒤 5년여 만에 폭발적으로 늘어 현재는 50여 곳으로 불어났다.
섀도 보팅이란 주총 정족수 미달을 방지하기 위해 불참한 주주들의 표도 주총에서 나온 찬반 비율대로 투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예컨대 배당금을 결의하려면 출석 주주 과반과 발행 주식 총수의 25%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출석한 주주들의 지분율을 합쳐도 20%밖에 안 된다면 이들 중 과반이 찬성하더라도 정족수에 미달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불참한 주주들의 의결권을 참석한 주주들의 투표 결과대로 배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폐지되며 실제로 주주 표를 모집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2020~2021년 동학개미 운동으로 소액주주 수가 급증한 것도 의결권 모집 업체 시장을 키웠다.
특히 올해 의결권 시장은 ‘쌍방 모집’이 많아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회사가 제안한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한 사측의 ‘일방 모집’이 대다수였다면, 올해는 공격(행동주의)과 방어(회사) 측이 모두 전문 업체를 선임하며 대결하는 경우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최근 가열됐었던 ‘SM 경영권 분쟁’에서도 카카오와 연대한 SM 측과 하이브 측은 각각 7곳과 2곳의 의결권 업체를 선임했었다.
◇‘쌍방 대리’ 금지 없어… 업계서도 “규제 필요”
시장 전체는 호황을 맞았지만, 모든 업체가 다 웃는 것은 아니다. 업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탓에, 늘어난 시장 규모에도 ‘쪽박’을 차는 업체가 많아진 것이다. 10년 전보다 주총 시즌 일감이 오히려 줄어든 업체도 있다. 업체 간 경쟁으로 단가도 하향 추세라고 한다. 한 의결권 모집 업체 대표는 “모집 단가는 주주 숫자와 지분 분산 정도, 주가 흐름 등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천차만별”이라면서도 “체감상 평균 단가가 5년 전에 비해 30~40%는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의결권 시장이 커진 만큼, 모집 행태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법령상으론 한 모집 업체가 표 대결 중인 회사 측과 소액주주 측 쌍방을 모두 대리하는 ‘이해 충돌’ 상황도 따로 금지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업체 대표는 “올해는 소액주주 측을 대리했다가 내년엔 사측을 대리할 경우, 올해 쌓았던 주주 정보를 내년에 그대로 활용하게 되는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며 “수집한 주주 개인정보를 제대로 폐기하는지 등의 개인정보 보호 측면도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