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증시의 부진으로 지난해 국내 350여 자산운용사 가운데 절반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주식과 채권 등 대부분의 자산 가치가 떨어졌고, 그 영향으로 기존 투자 자금도 은행 정기예금 등으로 이탈한 탓이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2월 결산 자산운용사 352곳 가운데 48.9%에 해당하는 172곳이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작년엔 11%(32곳)에 그쳤는데, 1년 만에 급증했다. 적자를 본 자산운용사들의 순손실 규모를 합치면 1600억여 원에 달했다.

1곳당 평균 9억원 정도 손실을 입었다. 가장 많은 손실을 본 운용사는 머스트자산운용으로 285억원에 달했다. 2위는 BNK자산운용으로 136억원 정도였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 특수’를 타고 들떴던 자산운용 업계가 1년 만에 폭삭 가라앉았다”는 말이 나온다.

◇수수료와 투자 수익 모두 추락

지난해 운용사들의 실적이 추락한 것은 증시 부진 탓이 컸다. 자산운용사의 수익은 크게 펀드 운용 대가로 받는 ‘수수료(보수)’와 운용사 자신의 고유 재산을 투자해 얻는 ‘투자 수익’으로 나뉘는데, 운용 수수료도 펀드 순자산의 일정 비율로 받기 때문에 결국 투자 성과에 좌우되는 구조다.

그런데 작년 주식과 채권 가격이 모두 폭락하는 바람에 수입이 급감했다. 공격적인 투자 성향의 펀드일수록 손실이 컸다.

적자 운용사의 상당수는 사모펀드 전문 운용사였다. 사모 운용사들이 지난 2020~2021년 코로나 특수 때 낸 수익으로 고유 재산을 불린 뒤, 작년 이것을 종잣돈 삼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가 낭패를 봤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또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 여파로 투자자들이 사모펀드에 대해 경계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올 들어 주목받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도 예외가 아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 1월부터 ‘SM 경영권 분쟁’을 촉발한 뒤 SM 주가 폭등으로 고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지난해에는 15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수수료 싼 ETF에 돈 몰려

결과적으로 ‘흑자 실적’을 기록한 운용사들도, 재무제표를 뜯어보면 영업에선 부진했던 경우도 있다. 예컨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작년 자산운용사 중 순이익 1위(1조6560억원)를 기록했지만, 실적이 좋았던 이유는 지난해 카카오뱅크 지분을 매각해 2조원대의 ‘영업 외 수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으로만 따지면 44억원 적자였다.

흑자 2위에 오른 미래에셋자산운용(4546억원)도 국내 영업보다는 지난해 증시가 호조를 보였던 인도 등 해외에서 거둔 실적 덕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급성장 중인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기존의 공모펀드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는 현상도 운용사들엔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해 공모펀드(ETF 제외) 순자산은 238조원에서 205조원으로 약 33조원(14%) 감소했다. 반면, ETF 순자산은 74조원에서 79조원으로 약 6% 불어났다.

ETF도 운용사가 수수료를 받긴 하지만, 수수료율이 통상 0.1% 내외로 기존 공모펀드(0.5~0.7% 내외)보다 싸다. ETF는 코스피200 같은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자동화’ 구조이기 때문에 운용사로선 그만큼 리스크가 덜하지만, 수익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작년 자산운용 업계는 글로벌 시장을 덮친 불황을 그대로 맞닥뜨리면서 부진했지만, 올해는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방)과 금리 상승 폭 완화 등 호재에 대한 기대감으로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