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소형주(株)는 온탕, 대형주는 냉탕’이다.

시총 규모 1000억원대 안팎의 비교적 작은 기업들은 공모주 경쟁률도 높고 상장 후 주가도 공모가의 배 이상으로 뛰어 환호하고 있는 반면, 조(兆) 단위 기업가치의 대형 기업들은 모두 흥행에 실패하거나 상장을 포기하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대형주들이 시장 침체로 인해 타격을 받는 모습이다.

지난달 27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반도체 유통기업 미래반도체의 16일 종가는 1만9410원으로, 상장 후 15거래일 만에 공모가(6000원) 대비 224%나 상승했다. 이 기업은 상장에 앞서 진행한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과 일반청약 경쟁률도 각각 1500대1, 900대1을 넘겼다. 공모가가 희망 범위 상단으로 결정됐는데, 상장 첫날에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정해지고 상한가 마감)’까지 기록했다. 상장 흥행의 조건을 달성했다.

◇중소형사 9곳 상장해 4곳 ‘따상’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코스닥에 상장한 중·소형주 9곳 중 4곳이 ‘따상’을 기록했다. 미래반도체 외에 오브젠, 스튜디오미르, 꿈비 등이다. 시초가가 공모가 2배로 시작한 뒤 장중 한때 상한가를 찍는 ‘장중 따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9곳 중 6곳(67%)에 달한다. 금투업계에선 “요즘 중소형 공모주 투자는 업종을 불문하고 세 번 중 두 번은 ‘로또’를 맞는 게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대로 대형주들의 상장 현황은 우울하다. 잇따라 흥행에 참패하거나 공모 절차를 중단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13일 신선식품 배송업체 오아시스는 고민 끝에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며 상장을 철회했다. 지난 7~8일 진행한 기관수요 예측에서, 투자자 다수가 공모가 희망 범위(3만500~3만9500원) 하단에 한참 못 미치는 2만원대 이하 가격을 써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아시스는 그나마 수요예측까지 거쳤지만, 이커머스 업체 컬리나 인터넷은행 케이뱅크는 예비심사 통과 단계에서부터 상장을 접었다. 모두 상장 준비 단계에선 조 단위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스타급’ 대우를 받았던 기업들이다.

◇“돈줄 말라 대형주는 못 떠받친다”

이렇게 희비가 엇갈리는 이유도 다름 아닌 ‘크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흥국증권에 따르면, 작년 자본시장이 전체적으로 가라앉으며 공모주 펀드의 총 설정액도 2021년 6.5조원에서 현재 3.4조원으로 반 토막 났다. 이에 따라 제한된 펀드의 돈으로 작은 업체들의 공모주 수요는 채울 수 있을지 몰라도 대형주의 수요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제한된 양의 물로 연못을 채울 순 있으되, 넓은 저수지를 채울 순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여기에 중소형주는 상장 흥행을 몇 번 이어가면서 “투자하면 번다”는 시장의 기대감도 생겼다.

대형주의 경우 낮은 공모가를 감수하기가 더 어려운 사정도 ‘상장 포기’를 부추긴다는 분석도 나온다. 많게는 수천억원 이상의 ‘큰손’ 투자를 받고 상장을 앞둔 대형사의 경우, 원래 장외 주가보다 공모가가 낮아지면 기존 투자자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희망 공모가 범위를 밑돌 경우 주요 투자자들이 “차라리 상장을 미루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중·소형주도 물론 기존 투자자가 있긴 하지만 그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다. 지난달 말 상장한 오브젠은 희망 범위 하단으로 공모가가 정해졌지만 상장을 추진했고 결국 ‘따상’을 기록했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경기 침체 우려가 풀리는 오는 하반기 이후에야 공모주 펀드 등 시장에 돈이 본격적으로 돌 것이고, 그 무렵 대형주 상장도 비로소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