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세계 증시가 예상 밖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특히 유럽과 중국 등 비(非) 미국권 증시의 강세가 주목을 받고 있다. 24일(현지 시각)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보고서를 통해 “유럽과 미국의 증시 동조화 현상이 약해지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미국 증시가 타국 증시를 앞서가던 지난 수년간의 경향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증시에만 주로 투자하는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연초 깜짝 랠리에 뒤처진 미국 증시

CNBC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 미국 증시 수익률은 글로벌 평균을 밑돌았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종목 3000여 개를 추종하는 러셀 3000지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6.3%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비미국 지수는 22% 이상 상승했고, 범유럽 지수인 스톡스(Stoxx)600 지수도 13% 이상 올랐다.

이런 현상은 올해 들어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올해 첫 거래일부터 24일까지 범유럽 증시 대표 지수인 유로스톡스50은 7.7% 상승한 반면 미국 S&P500은 4.7% 상승하는 데 그쳤다. 홍콩 항셍 지수는 춘절 연휴 전까지 올해 들어서만 9.2% 급등했다.

바클레이스는 미국 증시의 상대적 약세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가능성을 경고했다. 바클레이스는 “지난 두 달간 주식과 채권시장 모두 금리 인상 중단의 징조로서 디플레이션과 성장 둔화의 징후가 보일 때마다 환호했지만, 이제 미국에서 악재가 호재로 해석되는(bad news is good news) 시대는 끝난 것 같다”며 “증권시장은 활기를 잃어가는 반면 채권시장이 열기를 띠는 전형적인 침체기 투자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유럽·중국의 약진과 미국의 퇴조는 한우물 파듯 미국 증시를 고집하는 서학개미들에겐 악재다. 지난해 서학개미들의 국가별 외화증권 투자액(보관금액 기준)은 미국이 442억달러(약 54조5300억원)로 압도적 1위였고 2위인 독일은 29억달러에 불과했다. 중국도 15억달러에 그쳤다.

◇'의외로 좋은’ 유럽 경기, 경제 재개하는 중국

지난해 연말부터 중국 상하이지수와 홍콩 항셍지수 등 범중국권 주가가 크게 뛰는 것은 예상보다 빠르게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이 해제됐기 때문이다. 중국과 교역이 많은 유럽 증시도 중국의 리오프닝 영향을 크게 받았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에르메스 등 중국인들의 소비가 기대되는 명품 관련 주식들은 올 들어 10%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겨울이 예상보다 따뜻해 유럽이 ‘가스 대란’을 겪지 않은 것도 상승세의 원인이다. 스위스 투자사 롬바르드오디어의 사미 차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4일 로이터통신에 “유럽 가스 가격은 전망치에 비해 극적으로 좋아졌다. 네덜란드 천연가스 선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의 수준으로 다시 떨어졌고 8월 최고치보다 80% 하락했다”고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로존의 경기 서프라이즈 지수는 올해 1월 88.2를 기록해 2021년 7월 이래로 가장 긍정적이다. 시티그룹이 개발한 이 지수는 실제 발표된 경제지표가 시장 전망치와 얼마나 부합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0보다 클수록 긍정적인 지표가 많았다는 의미다.

다만 뒤늦은 금리 인상 효과로 유럽 경제가 신용 악화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 최근 유로존 경제지표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금리 인상의 영향이 점차 실물경제로 스며들며 상승세가 짧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중앙은행은 올해 2월과 3월 회의에서 금리를 각각 0.5%포인트씩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는 중국·유럽 주목해야”

월가에서도 올해 비(非)미국 증시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럿 나온다. 지난 23일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코스틴 수석 전략가는 CNBC에 “올해 미국 이외 국가의 주식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수익률을 상회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며 “중국과 유럽에 직접 투자가 어렵다면 뉴욕 증시에서 관련 국가 노출도가 많은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는 애플과 나이키 등 중국 내 생산량과 판매량이 많은 기업을 중국 리오프닝 수혜 종목으로 꼽으며 ‘투자’ 의견을 내놨다.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럽과 중국 등 미국 외 국가 주가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보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미국 증시가 하락하는데 다른 나라 증시가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미 미국 기술주 등에 많이 투자하고 있는 국내 투자자라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주식은 유지하면서 추가적으로 유럽과 중국 등 비미국 증시로 관심을 분산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