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유 업체가 석유 시추 중인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14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가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40% 가까이 떨어지면서 1년 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중국의 ‘제로(0) 코로나’ 봉쇄 완화와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 등이 추가 하락을 막고 있는 모양새다. 경기 침체라는 ‘마이너스 효과’와 중국 방역 완화라는 ‘플러스 효과’가 정반대의 압력을 불어넣으면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15일 한국석유공사 통계에 따르면, 뉴욕 상업거래소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14일(현지 시각) 배럴당 77.28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9일에 연중 최저치인 71달러 선으로 떨어졌던 유가가 다소 오른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120달러 선을 뚫고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40% 정도 하락했다.

◇경기침체가 유가 더 끌어내릴까

유가는 최근 6개월 동안 대체로 꾸준히 내렸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원유 수요를 위축시킨 영향이 컸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올 1·2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3분기에는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지만 소비 증가율은 1%대에 그쳐 2분기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지속적 금리 인상도 부정적 요소다. 금리 인상은 소비 감소로 이어져 결국 유가를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최고경영자)는 “내년 중반쯤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향후 유가는 경기침체 정도에 따라 배럴당 60달러대 중반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당국이 이달 들어 방역 정책을 대폭 완화한 것은 유가를 부양하는 요소다. 14억 인구의 중국 소비가 살아나면, 전 세계의 공장이 상품 생산을 늘리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지난 5~6월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효과’가 잦아들며 90달러 선까지 내린 유가가 중국 상하이 봉쇄 해제 소식에 다시 급등, 120달러 선을 또 넘은 적이 있다. 지난 10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원유 감산에 합의한 것이나,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 상한선을 부과한 것도 결국 원유 공급을 줄여 가격에는 상방 압력을 준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원유 수입국인 한국 입장에선, 유가 하락이 단기적으로는 호재지만 장기적으로는 꼭 희소식이 아닐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유 가격이 낮아지면 휘발유 등 정제유 가격과 각종 소비재 가격이 내리게 돼 가계 부담이 줄고 소비 진작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저유가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 경제가 좋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런 와중에 통상 유가가 미국 증시 등락을 따라갔던 경향도 올해는 약해져, 유가 예측을 더 어렵게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들어 원유 가격과 미국 S&P500지수가 반대로 움직이는 날이 전체의 47%였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 5년간 두 지표가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과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많은 투자금이 원유 선물(先物) 시장으로 흘러 들어왔고, 이에 따라 원유도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으로 인식돼 주가지수와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또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유가 상승이 미국 경제에도 호재로 작용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선 고금리(주가 하락)와 우크라이나 전쟁(유가 급등)이라는 특수 상황이 이런 동조 현상을 깨뜨렸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예측 기준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유가 예측은 더 어려워졌다”며 “결국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얼마나 더 이어질 것인지, 중국이 코로나 봉쇄 정책을 언제쯤 완전 폐기할 것인지 등에 유가의 향방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