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라젠과 코오롱티슈진처럼 2~3년 넘게 거래정지됐던 종목들의 거래가 재개된 가운데, 미국에 비해 지나치게 긴 거래정지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거래정지 주식을 들고 있는 개인 투자자들은 “목돈 주고 산 주식을 장기간 팔지도 못하니 손발이 꽁꽁 묶인 심정”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25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한국거래소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으로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 사유 발생 등의 이유로 주식 거래가 정지된 종목은 62개였고, 이들 주식을 보유한 소액주주 수는 86만4000여 명이었다. 기업 인수 목적 회사(SPAC)나 주식 액면분할 등으로 인한 단기 거래정지는 제외한 숫자다. 소액주주가 보유한 거래정지 주식 10억5000만여 주의 총 가치는 2조8000억여 원이었다.

◇‘무한정 보류’ 가능한 상장심사, 거래정지 기간 늘려

거래정지 종목들의 평균 정지 기간은 618일이었다. 86만명이 넘는 소액주주가 1년 8개월 넘게 보유 주식을 팔지도, 새로 사지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중 거래정지 기간이 1년이 넘는 주주 수는 37만명이었고, 3년이 넘는 주주 수도 6만2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장 기간 정지된 종목은 전자제품 제조업체 하이소닉으로, 4000명이 넘는 소액주주가 2018년 12월부터 3년 10개월 동안 76억여 원의 투자금을 빼지 못하고 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상장사가 공시 규정을 위반하는 등 시장 거래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일단 주식 매매를 정지하고 상장 적격성을 심사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그런데 심사 기간의 제한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거래정지 기간도 같이 길어지는 것이다.

거래소는 심사 과정에서 회사가 재무 건전성 등을 개선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하는데, 이 개선 기간이 코스피 시장은 최장 4년, 코스닥은 2년이다. 또 거래소는 회사가 제출한 자료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하면 개선 기간과 무관하게 ‘속개(심사 보류)’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이렇게 보류되는 기간은 아예 제한이 없다. 어떤 기업들은 1년 이상 심사가 보류되기도 한다. 투자자로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래정지를 무작정 버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자자들 “거래정지 손해 배상하라” 회사에 소송도

‘깜깜이 거래정지’를 견디다 못한 투자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경영진 횡령 문제로 3년 3개월간 거래정지된 자동차 부품 회사 세원정공의 주주 20여 명은 다음 달 중 회사를 상대로 “묶인 돈의 정기 예금 이자(연 5%)에 해당하는 금액이라도 배상하라”는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회사의 잘못으로 돈이 묶이는 손해를 봤으니 회사가 책임을 지라는 취지다.

1억원을 대출받아 세원정공에 투자했다는 직장인 박모(52)씨는 “목돈이 3년 넘게 묶인 것도 억울한데, 요즘 이자율까지 올라 매년 450만원씩 이자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거래소 심사 과정에서 주주 수가 많은 신라젠 같은 기업에 비해 더 외면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세원정공에 대한 거래소의 마지막 심사는 작년 4월 열렸는데, 이때 속개(보류) 판정을 받은 뒤 1년 6개월간 ‘감감무소식’ 상태다.

한국과 달리 자본시장 선진국인 미국은 거래정지 평균 기간이 짧다. 미국 증시에서는 올 상반기에 295건의 거래정지가 발생했다가 풀렸는데 평균 정지 시간은 33분이었다. 경영진 횡령 같은 문제가 불거질 경우 일단 주식거래를 정지하지만 회사가 그 내용을 충실히 공시하면 바로 정지가 풀리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거래정지 기간이 무한정 늘어날 수 있는 현행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제가 발생한 기업이라도 ‘충실한 공시’를 전제로 일단 주식 거래를 재개시키고, 투자자가 본인 판단으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의원은 “기약 없는 거래정지로 많은 개미 투자자가 재산권 행사를 침해받고 있다”며 “거래정지 기간에 최소한의 상한을 두는 방식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는 “불필요한 거래정지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