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는 인수합병(M&A)과 관련해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대형 M&A에 나선 기업이 단기적으로 막대한 비용 부담 때문에 주가가 크게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롯데케미칼과 LG화학 등 최근 M&A를 발표한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24일 롯데케미칼은 전 거래일보다 3.13% 오른 14만8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1일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를 생산하는 일진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발표 직전 거래일이었던 7일 15만3500원이던 이 회사 주가는 18일 16만6000원까지 올랐다.
앞서 지난 4일 미국 포쉬마크를 2조3000억여 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네이버는 일주일 만에 주가가 17% 하락하는 등 ‘승자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반면 롯데케미칼의 경우 M&A를 발표하자마자 주가가 오르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석유화학업종은 불황 장기화 우려로 20개월 가까이 주가 하락세가 이어지는 등 투자심리가 부정적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배터리 사업의 인수가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LG화학도 인수 발표 직전 주가 유지
지난 18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바이오업체 ‘아베오 파마슈티컬’을 약 8000억원에 인수하기로 발표한 LG화학 주가 역시 선방하고 있다. LG화학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신장암 치료제를 보유한 아베오 파마슈티컬의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했다. 발표 직전일이었던 10월 17일 57만5000원이던 LG화학 주가는 발표 당일 61만1000원으로 6.26% 급등했다. 이후 주가가 하락하기는 했지만, 현재 주가는 57만5000원으로 발표 직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강병준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LG화학이 보유한 현금과 이익창출력을 감안하면 이번 인수자금은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인수로 미국 항암제 시장 진출 기반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도 이익 창출력이 확대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대우조선해양 인수 소식이 알려진 한화그룹주의 경우 발표 직후 주가가 급락하기는 했지만, 점차 자리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우조선 최대주주가 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표 직전 7만4100원(9월 23일)이었던 주가가 5만2600원(10월 13일)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현재 6만1500원으로 6만원대를 회복했다.
◇‘승자의 저주’ 넘기까지는 첩첩산중
올해 대형 M&A에 나선 기업들 주가가 선방하는 배경에는 증시 하락으로 인수가격이 떨어졌다는 측면도 있다. 작년 12월 일진머티리얼즈 주가가 14만원을 웃돌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주가는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화 역시 2008년에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었는데 이번 인수 금액은 당시 거론되던 규모의 3분의1 수준이다.
증시가 고점이던 지난해 기업을 인수한 곳들은 말 그대로 ‘승자의 저주’에 갇힌 상태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IMM PE는 작년 7월 한샘 지분 27.7%를 1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작년 7월 한샘 주가는 14만원대까지 올랐는데, IMM PE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이보다 더 높은 금액인 주당 22만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현재 주가는 3만9900원까지 떨어졌다. 여기에다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주택매매 거래량까지 줄고, 원자재 가격은 하락하면서 한샘의 수익성도 곤두박질쳤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샘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349억원으로 작년(693억원)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최근 대형 빅딜을 성사시킨 기업들도 ‘승자의 저주’를 완전히 벗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 등이 걸림돌이다. 오윤재 한국신용평가 애널리스트는 “대규모 자금이 자본 확충 없이 지출될 경우 롯데케미칼의 순차입금은 4조원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며 “회사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부채비율이 올해 상반기 676.45%까지 치솟았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영업이익 적자가 불가피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