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의 모습/뉴스1

‘초우량 채권’으로 분류되는 은행 발행 채권(은행채)이 지난달 대규모로 시중에 나와 채권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권시장의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기업들의 회사채 수요가 말라붙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은행채 발행액은 총 25조8800억원으로, 월별 기준 사상 최고치다. 시중 발행 채권 가운데 은행채 비율은 올 들어 8월까지 23.3%에 불과했지만, 9월에는 40.1%, 10월(1일~21일)엔 41.1%까지 높아졌다.

은행들이 최근 이처럼 대규모로 자금 조달에 나선 건, 은행 통합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 규제 정상화 조치가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LCR은 자금난에 대비하기 위해 국채 등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을 단기 부채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제도다.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금융 당국은 2020년 은행의 통합 LCR을 이전 100%에서 85%까지 낮췄는데, 올해 말 92.5%를 거쳐 내년 7월까지 100%로 끌어올리기로 계획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은행채를 쏟아내고 있다.

은행들이 은행채 매각을 위해 금리를 높이면서 발행 금리도 급등하고 있다. 지난 20일 KB국민은행은 1400억원 규모의 3개월 은행채를 금리 4%에 발행했다. 같은 날 민간 신용 평가사 3사가 매긴 ‘AAA’ 등급 은행채 3개월물의 평균 금리(3.573%)보다 0.427%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초우량 평가를 받는 은행채 금리가 치솟으니 채권을 발행하려는 다른 금융사나 기업들의 부담이 커졌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긴급 조치로 지난 20일 “LCR 정상화 조치를 6개월 연장해 내년 6월 말까지 92.5%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일시적 조치일 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 임형준 선임연구위원은 “채권시장이 얼어붙고, 은행채 쏠림 현상이 벌어지는 데 그친다면 LCR 연장 조치 등이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경기 악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가 오래가면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