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입회장 내 스크린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모습이 비치고 있다. / AP 연합뉴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단행으로 시중금리가 크게 올라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주식·채권을 발행해 필요한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은행 대출금리가 치솟고 주식시장도 얼어붙은 상황에 회사채 발행까지 막히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더 험난해진 것이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3438억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올 초 1월(8조7709억원)과 비교해선 39.1%, 지난해 같은 달(8조4950억원)보다도 37.1% 급감한 규모다. 특히 신용 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더 어려워졌다.

◇AA급 기업도 회사채 흥행 저조

회사채 시장에 찬바람이 불다 보니 신용도가 높은 기업들까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용 등급 ‘AA-’인 SK리츠는 지난달 회사채 960억원 모집에 나섰지만 910억원을 주문받는 데 그쳤다. 목표 금액인 1500억원에 크게 못 미쳤다. 메리츠금융지주(AA급) 역시 총 3000억원을 모집하는 데 1500억원만 모였다.

신용 등급이 싱글 A급으로 더 낮은 기업들의 성적은 초라하다. 지난 7월 A+ 등급의 통영에코파워는 780억원 모집에 나섰지만 10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GS그룹 계열사 GS엔텍(A0) 역시 800억원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모집액은 4분의 1 수준이었다.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 조달에 성공하더라도 높은 금리를 감당해야 한다. 신용 등급 트리플 A급으로 최고 등급인 한국전력은 지난 4일 3800억원 규모 회사채를 5% 이상 금리로 발행했다. 2년물 금리는 5.5%, 3년물은 5.6%였다. 한전채 발행 금리가 5%대 중반까지 오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지난달 신용 등급 BBB- 기업의 회사채 3년물 금리는 11.382%로 연고점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신용 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기업들은 높은 금리를 무릅쓰고 은행 대출 창구로 몰렸다. 지난달 5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692조원으로 한 달 전(682조원)보다 10조원가량 늘었다. 공모채보다 금리가 높은 사모채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지난해 양호했던 실적 덕분에 어느 정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고 은행들도 기업 대출을 늘려왔기 때문에 자금난이 본격화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은행들도 국내외 경기 둔화와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로 향후 기업 대출 확대를 제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용도 낮은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내년까지 만기 도래 회사채 82조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이나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 차선책으로 일정 기간이 지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를 발행하거나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최소 올 연말까지, 길게는 1년 반 정도 현재와 같은 금융시장 경색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당장 이번 달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7조7806억원에 달한다.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12조8828억원, 내년에는 69조8074억원 규모다.

김은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통화정책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금리 상승이 연말까지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며 “위축된 채권 투자 심리 역시 연말까지는 쉽게 회복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 대표는 “시장금리가 내년 1분기쯤 정점을 찍은 뒤에도 이후 1년간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며 “지금부터 1년 반 정도 사이에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적 기대감이 큰 일부 기업은 신용도가 낮아도 회사채 시장에서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용 등급 BBB급인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달 5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 예측에서 주문이 몰려 최종 800억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8779억원 이익을 내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작년 상반기보다 11.3% 증가한 5198억원 이익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