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리 상승과 강(强)달러 현상으로 주요 국의 증시가 움츠러드는 가운데,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일본 주식을 사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학개미(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출렁이는 국내와 미국 증시 등에서 뺀 돈을 일본 증시에 투자하고 있다.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거래 건수는 9740건으로 지난 2011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9월도 9219건으로 역대 셋째로 많았다. 일본 주식 매수 금액 기준으로는 8월이 1454억원으로 작년 11월 이후 9개월 만에 최대였다. 일본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도 지난 3개월간 1431억원에서 3356억원이 돼 2배 이상으로 늘었다.
◇ 일본 주식 8월 거래건수 11년만에 최대… 홍콩 증시 21% 폭락할 때 日증시 -1%대로 선방
개미들이 일본으로 향하는 건, 무엇보다 전 세계적 증시 폭락세에도 일본 증시가 선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는 지난 3일 2만6215.79로 마감했다. 올 초 대비 9% 하락한 수준이다. 반면 한국 코스피는 같은 기간 28% 떨어졌다. 미국 S&P500 지수도 23% 주저앉았다. 지난 7~9월 3개월간 최근 흐름을 봐도 닛케이는 불과 1%대 하락 폭을 보였다. 한국·중국·홍콩 증시가 8~21%대 급락한 것과 대비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역대급 엔저 현상이 일본 증시를 떠받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엔화 가치가 하락해서 같은 달러로 더 많은 일본 주식을 매수할 수 있어 외국인 투자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최근 1달러당 엔화 환율은 144엔대까지 치솟아 지난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만일 엔화 가치가 저점을 찍고 오를 경우 외화로 환산한 일본 주식 가치가 더 올라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엔저 기류가 본격화된 지난 8월부터 일학개미의 거래량이 급증했다.
◇6년간 마이너스 금리 유지로 증시에 돈 몰려
최근 일본이 주요 국과 달리 여전히 저금리를 유지하며 확장적 통화 기조를 취하는 것도 증시에 긍정적이다. 일본 통화 당국은 지난달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연 -0.1%, 장기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했다. 일본은 2016년 초부터 6년간 이런 초저금리를 유지 중이다. 반면 미국은 올 들어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정책금리를 연 3~3.25%까지 빠르게 올렸고, 한국도 외자 유출을 피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2.5%까지 올렸다. 고물가로 신음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이 2%대 안정적인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엔저 현상과 그에 따른 증시 부양 효과가 미국의 긴축 정책이 유지되는 연말까지는 대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일본이 이달 11일부터 외국인 여행객 입국자 수 제한을 전면 폐지하면서 코로나로 위축된 일본 산업계가 여행과 유통업을 필두로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여행객 수가 늘어나면서 일본 공항·철도 등 인프라 관련 주나 백화점·편의점 등 유통 관련 주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