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인 투자자들이 하락세인 주식에서 돈을 빼 비교적 안전한 자산인 채권을 사는 추세가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주식형 ETF’에서 ‘채권형 ETF’로 갈아타는 개미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ETF란 주식이나 채권 여러 종목에 투자하는 일종의 ‘종목 꾸러미’인데, 채권으로 구성된 꾸러미의 인기가 역대급으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고금리 영향으로 떨어진 채권 가격이 개미들의 ‘저가 매수’ 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금융정보업체 코스콤에 따르면, 지난달 개인 투자자의 채권형 ETF 순매수 금액은 약 433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 채권형 ETF가 시장에 처음 등장한 이후 2013년 12월(약 659억원)에 이어 역대 둘째로 많은 규모다. 반면 주식형 ETF는 개인 투자자들이 지난달 443억원을 순매도했다. 개미들이 주식형을 팔고 대신 채권형을 사들인 것이다.

◇고금리로 낮아진 채권 값, 저가 매수 노린 개미들

개미들의 채권형 ETF 투자는 올 들어 부쩍 늘었다. 연초부터 지난 20일까지 9개월간 개인들의 채권형 ETF 누적 순매수 금액은 약 1455억원이었다. 이는 ‘동학 개미’란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주식시장이 활황기였던 작년과 재작년 2년 치 순매수 금액(1253억원)보다 많은 것이다. 올 들어 약세를 보이는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온 돈의 상당수가 채권형 ETF로 들어온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개미들이 가장 많이 산 채권형 ETF 종목은 키움투자자산운용의 ‘KOSEF 국고채 10년’(122억원), KB자산운용의 ‘KBSTAR KIS국고채 30년’(79억원) 등이었다.

채권형 ETF의 인기 배경에 ‘저가 매수’ 심리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비례하기 때문에 금리가 오를수록 떨어지는데, 최근 고금리로 채권 가격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고 판단한 개미들이 채권형 ETF 매수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KB자산운용 관계자는 “연말까지 금리가 더 오를 수도 있지만, 이미 채권 가격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라서 지금 사두면 내년 이후엔 수익 실현이 가능하다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높은 가격 안정성도 채권형 ETF의 장점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채권은 주식보다 가격 변동이 작은데, 채권형 ETF는 개별 채권들을 다시 여러 개 모은 묶음이라 변동성이 더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또 운용사가 수시로 종목을 빼고 넣으며 수익률을 관리해주기 때문에 개별 채권에 대해 잘 모르는 개인들에게 편리하다. 키움투자자산운용 관계자는 “채권형 ETF가 시장 침체기에 위험 기피 성향이 된 개인들이 선호하는 안전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만기형 채권 ETF’까지 등장

채권형 ETF는 채권처럼 최소 몇 개월 이상의 중·장기 투자가 일반적이지만, 최근엔 단기 투자로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도 등장했다. 예컨대 채권 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하면 수익률이 2배가 되는 레버리지 상품인 KB자산운용의 ‘미국 장기국채 선물 인버스 2X’의 경우 최근 1개월 수익률이 14.3%로 전체 600여 종의 ETF 중에 1위다.

ETF 업계는 커지는 개미들의 수요에 맞춰 새로운 채권형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만기가 있는 채권형 ETF’다. 원래 채권형 ETF는 개별 채권과 달리 만기 개념이 없어서, 확정된 이자 수익이 아니라 매매 차익으로 수익을 내야 했다. 그런데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이자 수익을 보장하는 상품이 등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년 만기의 금리 3%짜리 채권형 ETF를 1억원어치 사면, 이것을 1년간 보유한 뒤 300만원의 이자 수익을 챙겨도 되고, 중간에 팔아서 차익을 거둬도 되는 것이다. NH아문디자산운용·KB자산운용 등이 다음 달쯤 출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원래 낮은 리스크로 기관 투자자들이 주 고객이었던 채권형 ETF 시장이 고금리 시대를 맞아 바뀌고 있다”며 “내년 이후 금리가 실제로 떨어질 때 채권형 ETF에 대한 개미들의 수요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