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위한 퇴직연금에 특화된 이른바 ‘라이프 사이클(생애 주기) 펀드’들이 최근 상장지수펀드(ETF) 형태로 속속 출시되고 있다. 퇴직연금 계좌에 있는 목돈으로 장기 투자했던 기존 펀드들과 달리 ETF형 상품은 매일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펀드 판매사를 끼지 않아 수수료가 저렴하고 현금화가 빠르며, 투자 종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업계에선 “퇴직연금 펀드가 점점 ETF화(化)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30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 최초로 타깃인컴펀드(TIF)를 ETF 형태로 만든 ‘TIGER 글로벌 멀티에셋 액티브’ ETF를 한국거래소에 상장했다. 이 상품은 은퇴자들이 노후 자금을 투자하면 매월 원금의 0.26% 정도(연간 약 3%)를 분배금 형태로 꾸준히 받으면서도 원금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투자자가 이 ETF를 5억원어치 구입해 놓으면, 매월 평균 130만원가량을 받으며 은퇴 후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타깃 인컴 펀드’라는 명칭도 투자자에게 안정적인 소득(인컴)을 가져다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뜻인데, 이것이 ETF 형태로 출시된 것이다.

◇‘연금 특화’ 펀드들, 이제 ETF로도 출시

앞서 6월엔 한화자산운용이 타깃데이트펀드(TDF)를 기초로 한 ‘ARIRANG TDF 액티브’ ETF 4종을 내놨다. 이 ETF는 설정된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위험자산인 주식 비율을 낮춰주고 안전자산인 채권의 비율을 높여준다. 그래서 퇴직 시점(데이트)을 목표로 삼는다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예를 들어 2060년이 은퇴연도로 설정된 ETF를 올해 사면 처음 주식 투자 비중은 80%였다가 은퇴 시점에선 30% 정도로 낮아진다. 삼성자산운용과 키움자산운용도 각각 TDF를 기초로 한 ETF 6종을 최근 상장했다.

일종의 ‘연금 특화’ 펀드인 TDF와 TIF는 서로 한 쌍의 패키지 상품처럼 각광받고 있다. 예를 들어 은퇴 시점을 2030년으로 설정한 TDF펀드에 가입하면 2030년까지 자동적으로 안전자산 비율을 높이는 자산 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다가 2030년 은퇴 후 TIF 펀드에 들게 되면, 연간 원금 대비 3~4% 정도의 분배금을 받으며 자금 운용이 가능하다. 지난달 말 기준 TDF·TIF 설정액은 총 10조2000억원 정도로 3년 전인 2019년(3조2000억원)의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회사가 자금을 운용하는 DB(확정급여)형 연금이 아닌, 개인이 투자처를 결정하는 DC(확정기여)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가입이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이런 연금 특화형 펀드들이 ETF로 출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투자자 입장에서 수수료가 낮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TDF의 경우 기존 수수료는 1% 안팎이었지만, TDF ETF의 수수료는 총투자액의 0.14~0.38% 정도로 싸다. TIF도 펀드에서 ETF화되면서 수수료가 0.2%포인트가량 낮아졌다. 일반 펀드는 판매사가 중간에 판매 수수료를 떼가는 구조이지만, 증시에서 바로 사고팔 수 있는 ETF는 그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현금화도 빠르다. 기존 펀드는 해지하고 돈을 돌려받는 환매 절차에 약 7~8영업일이 소요됐지만, ETF는 주식처럼 2영업일이면 가능하다. 또 상장된 상품 특성상 펀드 구성 종목을 매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수수료 낮고 현금화 빠르지만 ‘쉬운 거래’의 함정도

현재 전체 규모가 30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은 80% 이상이 예·적금 등 원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원금이 보장되는 만큼 수익률도 적어 작년 퇴직연금의 전체 평균 수익률은 2%였다. 반면, TDF나 TIF는 원금 비보장 상품인 대신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여기에 더해, 같은 TDF 상품을 수수료율이 낮은 ETF 형태로 가지고 있는다면 투자자 입장에선 더욱 이득인 셈이다.

그러나 ETF화된 연금 펀드가 장점으로 내세우는 ‘편리한 매매’가 오히려 연금 상품 제1목표인 ‘안정성’을 훼손할 우려도 있다. 퇴직연금은 긴 호흡에서 분산해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매일 순자산 가치(ETF의 가격)를 확인하고 매매가 가능해지면 일반 주식 운용과 다를 바가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피 200 같은 일정한 지수를 추종해야 하는 ETF 특성상 일반 펀드보다 자유로운 운용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연금 펀드를 ETF로 가지고 있는 투자자는 단기적인 가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수년 이상 장기 보유할 때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