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2일 급등해 1360원을 넘어섰다. 금융 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1일(1379.5원) 이후 13년 5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일보다 7.7원 오른 1362.6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틀 만에 25원, 한 주 전과 비교하면 31.3원이 급등했다.
국제 유가 상승세가 한 풀 꺾이긴 했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이어서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일반적으로 원화 가치 하락은 수출품의 달러 기준 가격 경쟁력을 강화시켜 수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문제인 지금 같은 상황에선 원화 기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경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날 발표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7%로, 전월보다는 상승 폭이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의 목표치(2%)보다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면서 엔화·파운드화 등 주요 통화들의 가치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달러 대비 일본 엔화 환율은 1달러당 140엔 선을 돌파해 24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엔화 가치 하락). 파운드화의 미 달러화 대비 가치는 지난달 5%가량 내려갔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110대를 육박하며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아 있다.
지난달 말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이는 ‘잭슨홀 미팅’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계획이 발표된 이후 촉발된 강달러 현상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는 가운데 중국과 유럽의 경제 전망이 갈수록 악화해 달러의 상대적 가치가 크게 올랐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고용이 계속 견조하게 나오고 있어 연준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했다. 2일 발표된 미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미 고용자 수는 예상보다 많은 31만5000명 증가해 전문가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실업률은 3.7%로 1969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 가치의 상승은 외환시장이 미국의 강력한 기준금리 인상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파월 의장뿐 아니라 연준 고위 인사들은 잭슨홀 미팅을 전후해 현재 연 2.25~2.5%인 기준금리를 연내 4%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강태수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기준금리를 0%에서 4%로 끌어올리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연준 인사들이 경고하는 수준만큼 기준금리가 오르게 되면 한국과 같은 신흥 시장에서 자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등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고, 그런 전망이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에선 환율이 앞으로 더 올라 달러 대비 1400원대에 육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강 교수는 “한국은행은 연내 최대 3%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것임을 시사했는데, 미국과 한국 사이 기준금리 차이가 벌어지면 환율은 더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시장엔 한동안 환율이 1350원은 넘지 않으리라는 암묵적 예측이 있었지만 이미 이 ‘방어선’이 깨진 상황”이라며 “심리적 저지선을 넘으면 한동안 환율이 더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했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63.5원 급등해, 상승세가 이미 가파른 상황이다.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하면 한국 경제엔 큰 부담이 생기게 된다. 박 실장은 “과거엔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지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라며 “그러나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수입 물가가 높아져 전체적인 물가가 올라 경기가 둔화되고, 기업들이 외화로 빌린 자금을 갚을 때 부담이 커지게 된다”고 했다.
달러 강세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엔화·파운드화 등 주요 통화들의 가치 역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1일(현지 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1달러당 일본 엔화 가격은 140엔을 돌파했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40엔을 넘은 것은 1998년 8월 이후 24년 만이다.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도 폭락했다. 파운드화의 미 달러화 대비 가치는 지난달 한 달 동안 약 5% 내려갔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 나온 2016년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2일 파운드 대비 달러 가치가 1.15달러 선까지 급락(달러 강세)했는데, 이런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영국 파운드화도 유로화처럼 곧 ‘1파운드=1달러’ 선이 깨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2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 인덱스는 109 중반을 오르내렸다. 109 선을 넘은 것은 2002년 이후 20년 만이다. 달러 인덱스는 1일 장중 한때 109.991을 찍으며 110선에 근접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며 달러 가치는 계속해서 치솟고 있다. 중국과 유럽의 경제 전망이 갈수록 악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경제지표는 여전히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일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로 끝난 한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보다 5000명 감소한 23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9주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월가 예상치 24만5000명을 밑도는 수치였다.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시장 예상을 웃도는 52.8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킹달러’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모든 요인이 달러 추가 강세 한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달러 강세가 전 세계 통화에 대학살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