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 26일(현지 시각) “지금은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멈출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준이 매년 와이오밍주의 휴양도시 잭슨홀에서 개최해 ‘잭슨홀 미팅’이라고 이름 붙여진 국제 심포지엄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주겠지만, 물가 안정 없이는 더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8분간의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란 단어를 46차례나 사용했다.

그는 “제 발언은 짧고, 주제가 좁고, 메시지는 더 직접적일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시장이 오해할 여지가 없도록 직설 화법으로 확실하게 말하겠다고 하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파월의 발언을 기다려온 세계 금융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7일(현지 시각)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잭슨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파월 “지금은 멈출 때 아니다”…美 증시 3%대 폭락

파월 의장은 시장이 듣고 싶었던 말을 하지 않았다. “7월에 인플레이션이 둔화한 것을 환영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떨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에 한참 부족하다”면서 최근 시장에 퍼진 ‘파월 피봇(pivot·입장 선회)’에 대한 기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는 “연준의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8.5%로 6월(9.1%)보다 낮아졌지만, 파월은 갈 길이 멀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제롬 파월(오른쪽)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25일(현지 시각)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세계 중앙은행장 경제정책 심포지엄 ‘잭슨홀 미팅’에 참석해 부인 엘리사 레오나드와 만찬장에 들어서고 있다. 26일 파월 의장은 미국의 경제와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연설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9%대인 인플레이션이 4~5%대로 낮아지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고용 시장을 생각하면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멈출 때가 아니다. 물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제한적인 정책(기준금리 인상)이 요구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발언했다.

연준이 올해 세 차례(9월, 11월, 12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파월의 예고가 나오면서 뉴욕 증시는 급락했다.

연준이 경기 침체를 우려해 정책 방향을 틀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 속에 그간 상승세를 보였던 금융시장은 찬물을 뒤집어 쓴 듯 폭락했다. 뉴욕증시는 이날 다우지수가 3.03%, S&P500이 3.37%, 나스닥 지수는 3.94% 곤두박질쳤다.

◇달러 강세 이어지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미국이 금리 인상 고삐를 계속 죄고, 가계와 기업의 고통이 커지면 경기침체 우려도 높아진다. 르네상스 매크로리서치의 미국 담당 이코노미스트 닐 두타는 이날 뉴욕타임스에 “(물가를 잡기 위한) 과정에 고통이 없을 수 없다. 파월은 그 점에 대해 더욱 솔직해졌다”며 “경기침체 가능성이 올라갔다”고 내다봤다. 미국 경제의 둔화로 세계 경제가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역대급 달러화 강세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중국 위안화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급등한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부담이 커지면서 중국과 유럽은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는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이창용 한은 총재 “한국도 금리 인상 지속”

파월 의장의 발언이 나온 다음 날인 27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잭슨홀 현지에서 로이터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은도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라며 “미국보다 금리 인상을 먼저 종료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은은 작년 8월부터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고 지난 1년간 0.50%에서 2.50%로 끌어올렸다. 올해 3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연준은 기준금리를 0.25%에서 2.50%로 올렸는데, 파월의 예고대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더 오른다면 한국도 더 올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8월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7월 6.3%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물가가 정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겨울이 오면 에너지 가격이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 7월 통화정책방향 회의 이후 공식 의결문에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물가 흐름이 현재 우리가 전망하고 있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