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에 발생한 이른바 ‘도이치뱅크 옵션 쇼크’ 사건은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 사건은 2010년 11월 도이치뱅크 홍콩지점과 한국도이치증권 임직원이 주가가 하락하면 이득을 보는 파생상품(풋옵션)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보유하고 있는 국내 주식을 2조원어치 이상 매도해 주가를 떨어뜨린 혐의를 받는 내용이다. 검찰 조사 결과, 투자자 피해가 1400억원대에 달했고 해당 임직원들은 400억원대 부당 이득을 취했다.

미공개 정보 이용이나 시세 조종 같은 증권 범죄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처벌 강도도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이 적발한다 하더라도 검찰의 기소와 법원에서 3심까지 가는 재판에 통상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씩 걸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형사처벌과 별도로 금융 당국이 과징금을 부과하고, 범죄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를 돕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증권 범죄, 적발부터 판결 확정까지 2년 이상 걸려

도이치뱅크 사건 주범인 홍콩지점 상무 데릭 옹(Derek Ong)은 검찰의 소환에 불응해 한 번도 국내에 입국하지 않아 아직 처벌을 피하고 있다. 공범으로 기소된 당시 한국도이치증권의 상무 박모씨는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15억원 판결을 받았지만 지난 2018년 2심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이 상고해 3심이 진행 중이지만, 대법원은 사건 접수가 된 지 3년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검찰이 금융 당국으로부터 통보받은 증권 관련 범죄에 대해 기소나 불기소 등 처분을 내릴 때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393일로, 1년이 넘었다. 기소된 다음에도 재판을 통해 판결 확정까지 걸리는 기간이 400일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적발로부터 판결 확정까지 평균적으로 2년 이상 소요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처벌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실형 대신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주가조작 등 증권 불공정거래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64명 중 26명(40.6%)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는 일반 사기범(38.2%)이나 범죄조직을 통한 사기범(15.3%)의 집행유예 비율보다 높은 것이다. 지난 2018년 삼성증권 직원들이 회사의 착오로 잘못 입고된 주식을 시장에 판 이른바 ‘유령 주식’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지난 3월 관련자 8명에 대해 모두 징역 1년~1년6개월형의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확정했다.

◇전문가들 “금융 당국이 선제적 과징금 부과할 수 있어야”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증권 사범도 다수다. 작년 금융위원회가 적발한 불공정거래 사범 99명 중 21명(21.2%)은 과거에 이미 한 번 이상 적발된 적이 있는 전력자들이었다. 이 비율이 재작년엔 28.5%였다. 증권 범죄 혐의자 10명 중 3명꼴로 상습범인 셈이다.

이렇듯 제재 강도가 약한 반면, 증시 관련한 위법 행위로 피해를 본 주식투자자들의 구제책은 미비한 상태다. 집단 소송 제도가 있지만, 집단 소송을 개시하는 데만 수년이 걸리는 등 진행이 느리고, 원고(피해 투자자들)가 회사 내부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어 피해 증명도 까다롭다. 2013년 GS건설의 분식회계로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건 투자자 2000여명은 8년 만인 작년에 2심 과정에서(1심은 패소) 화해 결정으로 86억원을 배상받았는데, 이는 실제 피해 금액의 45% 정도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형사처벌 외에도, 금융위 등 금융 당국이 범죄를 적발한 뒤 곧바로 과징금 처분을 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징금은 형사처벌이 확정되기 전에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불공정 거래 혐의자들에게 선제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 범죄 상습범의 경우 가중처벌을 하는 법안도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증권범죄가 발생하면 우선 관련자가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받고 이후 방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형사처벌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굵직한 사건이라도 나중에 어떻게 처벌받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면서 “형사 처벌에만 의존하지 말고 거액의 과징금 등 유연한 제재를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