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주유소. /뉴스1

기업 가치가 10조원으로 예상되며 올해 하반기 IPO(기업공개) 시장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했던 현대오일뱅크가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2012년과 2019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인데 최근 악화된 투자 심리가 발목을 잡았다. 코스피 지수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심화와 금리 인상, 경기 불황 우려로 최근 1년간 30% 가까이 하락하면서 상장 여건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 상황과 동종사의 주가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며 “우수한 실적에도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현 시장 상황에서 더는 기업공개를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올해 IPO 대어급 줄줄이 철회

올해 초까지 현대오일뱅크 상장 여건은 좋았다. 지난해 유가 상승세에 이어 올해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정유업이 초호황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매출액 20조6066억원, 영업이익 1조1424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올해 1분기에도 매출 7조2426억원, 영업이익 7045억원으로 좋은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최근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유가가 급락해 분위기가 급변했다. 경쟁사인 에쓰오일 주가는 지난달 13일 장중 12만3000원까지 올랐지만, 현재 9만3700원까지 떨어졌다. 한 달여 만에 주가가 24% 하락한 것이다.

정유 업계는 그나마 올해 증시 하락장에서 늦게까지 버텼지만 IPO를 준비하던 타업종 기업들은 일찌감치 계획을 철회했다. 시가총액 6조원대로 건설 업종 대장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던 현대엔지니어링은 저조한 기관 수요예측 결과를 받아들고 지난 1월 상장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ADT캡스로 잘 알려진 보안 기업 SK쉴더스 역시 지난 5월 코스피 상장을 노렸지만, 기관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금융감독원에 IPO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결국 올해 상반기(1~6월)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 단 한 곳뿐이었다. 작년 상반기(4곳)와 비교하면 IPO 시장이 크게 위축된 셈이다.

◇케이뱅크 “계획했던 대로 진행할 것”

올해 하반기 IPO를 준비 중인 다른 기업들은 일단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오일뱅크 상장 철회로 올해 하반기 IPO 최대어 바통을 이어받은 케이뱅크는 일단 예정대로 11월 상장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2878억원 매출을 올린 케이뱅크의 기업 가치는 8조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아직 재검토 논의는 없었다”며 “되든 안 되든 계획했던 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스피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한 쏘카는 8월 상장 목표로 후속 절차를 밟고 있고, 신선식품 새벽 배송 기업 컬리도 거래소에 상장 심사를 위한 보완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다만 시장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해 총 30사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6사는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11사는 공모가 대비 현재 주가가 20% 이하로 내려간 상태다.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기업들이 목표로 한 수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코스닥에 상장한 공구우먼의 경우 기관 수요예측이 저조해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상장한 뒤 증자를 통해 주식 수를 늘리는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

최종경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상반기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 수익률을 보면 결코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며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공모 확정가가 약세로 접어든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안정된 공모가를 기반한 수익률 반등을 예상할 수 있는 시기”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