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이준호 NHN 회장 자택 앞. NHN 소액주주 10여 명이 모여 ‘이준호 회장은 물러나라’ ‘소액 주주 병들어 죽는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주가 하락에 항의하는 집회를 벌였다. 집회를 주최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지난 5월부터 세 차례 이곳에 모여 “주주에게 사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했다.
NHN은 지난 2013년 네이버 분할을 시작으로 2017년 페이코, 지난 4월 NHN클라우드 등 핵심 사업부를 분할하면서 주가가 꾸준히 떨어졌다. 지난 1일 종가는 2만9050원으로, 작년 고점(5만1851원·수정주가 기준) 대비 44% 하락했다. 집회에 나선 소액주주들은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주가 부양책을 쓰라”고 요구했다. NHN은 결국 지난달 20일 약 3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선다고 공시했고, 다음 날인 21일 주가가 10%가량 올랐다. 이후 이 회장 집 앞 집회는 그쳤다.
◇주가 폭락하자 뿔난 주주들, 총수 집 앞으로
최근 코스피가 20개월 만에 장중 2300선 아래로 떨어지는 등 주가가 떨어지자 불만을 품은 소액주주들이 회사 총수나 CEO(최고경영자) 집 앞에 몰려가 시위를 벌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 자택 앞에서는 지난 5월부터 한투연 회원 10명가량이 거의 매주 주말 집회를 벌이고 있다. 현재 한화 주가는 2만5000원 안팎으로, 작년 고점(3만6600원) 대비 약 30% 떨어졌다. 한투연 측은 “사측이 주가 부양 노력을 안 보이면, 앞으로 한화생명 등 계열사들의 대표 자택으로 찾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최근 10개월 새 주가가 반 토막 난 셀트리온 주주 단체도 지난 5월 경기 성남시에 있는 서정진 명예회장(전 회장)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소액주주들의 ‘집 앞 시위’는 예전엔 없던 현상이다. 여의도 증권업계에 따르면, 1980~1990년대엔 이런 시위가 증권가가 있는 여의도에 집중됐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직접 해당 기업 본사에 찾아가 집회를 벌이는 일이 잦아졌고, 최근엔 아예 CEO 집에 찾아가는 ‘초강수’를 둔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이 각종 인터넷 주주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결속력을 다지면서 집 앞 시위 같은 ‘실력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극성 주주의 떼쓰기”라는 비판도
이런 집 앞 시위를 보는 증권업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소액주주의 권리 확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개인 집 앞까지 찾아가 시위하는 것은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주들의 의견 표명이라는 명목하에 일부 극성 단체의 ‘떼쓰기’가 일반화되면,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실적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당장 회사를 압박해 자사주 매입 같은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을 얻어낼 수 있겠지만, 그게 오히려 회사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한상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요즘처럼 경기 불확실성이 높은 때 기업은 현금 자산을 들고 있는 것이 안전한 판단”이라며 “일부 주주의 등쌀에 주가를 방어하려 써버린다면 장기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행동에 나서는 주주들이 전체 소액 주주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지난 5월 셀트리온 서 전 회장 자택 집회를 앞두고 한 주주 커뮤니티에선 “시위가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준다” “압박은 소통이 아니다”라는 시위 반대 글과 댓글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특정 단체가 시위를 주도하는 경향도 보인다. 실제 최근 NHN, 한화, 셀트리온 CEO 자택 앞 시위는 한투연이 주최하거나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식 투자는 본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며 “최근 하락장은 국내외 금리 상승 등 외부 요인 탓이 큰데, 기업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