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시장이 최근 급격히 커지면서 ESG에 투입되는 기업의 자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ESG 시장 규모는 7321억달러(약 887조원)로 집계됐다. 2013년 266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데다, 2018년(3093억달러)보다 2년 새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경영 활동을 하는 데 ESG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고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금융권 역시 ESG가 거대한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의 금융사들도 이에 맞춰 발 빠른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금융사는 ESG 심판이자 선수”
EGS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2020년 보낸 연례 서한이 촉발했다는 평가가 많다. 투자할 때 기후변화 대응 등 ESG 요소를 고려하겠다는 내용을 담자 세계의 ‘큰손’인 블랙록의 방향성에 맞춰 기업들이 ESG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금융회사가 기업 경영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드러낸 사례다.
직접 투자를 하는 자산운용사가 아니더라도, 금융사는 다양한 경로로 ESG 경영에 영향을 끼친다. 역으로 거래하는 기업의 ESG 활동이 금융사에 끼치는 파급효과도 크다. 예를 들어, ESG 중 환경(E) 문제가 발생한다면 금융사는 크게 두 경로로 타격을 입는다. 우선 기후변화로 거래 기업에 물적 피해가 발생할 경우 보험사는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이 올라가고, 은행의 경우 담보 가치가 하락한다. 또한 저탄소 경제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화석연료 및 탄소 배출 산업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담보 가치 하락, 투자자 및 금융사는 투자 손실로 이어진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후변화는 금융사에 다양한 형태의 문제로 이어져 건전성을 훼손한다”며 “ESG 요소가 불확실성을 높여 시스템적인 위험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금융사와 금융 당국 차원의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사는 또 스스로도 자금을 끌어오려면 ESG 경영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ESG를 심사하는 ‘심판’이자 ‘선수’로서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금융사들도 ESG 경영을 도입하며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SG 평가 기관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기준 국내 ESG 펀드는 116개로 1년 전(60개)보다 56개 증가했다. 지난해 새로 출시되거나 변경된 ESG 펀드 중 27개는 친환경 테마 펀드였다. 국내 ESG 펀드 순자산 규모는 1년 전보다 147% 증가한 7조9064억원으로 집계됐다.
앤드루 하워드 슈로더투자신탁운용 지속가능투자 글로벌 대표는 “ESG 관련 금융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올해도 작년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에는 전적으로 유럽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었지만 이제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ESG 위원회 꾸리고, ESG 채권·펀드 출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해 3월 이사회 내에 ESG경영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에서 회사의 지속 가능 경영 전략 수립, ESG 정책 수립 및 추진 활동 보고,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 승인 등 미래에셋생명의 ESG 관련 제반 업무 집행을 관리·감독한다. 또한 ESG경영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이사회는 ESG 인증을 받은 1500억원 규모 후순위채권 발행을 의결했다. 당시 수요 예측 과정에서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약 4000억원어치의 주문이 몰리자 최종적으로 3000억원 규모로 ESG 후순위채권을 발행했다.
현대해상도 작년 3월 ESG운영위원회를 설치했다. 6월엔 전국 탈(脫)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를 통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과 관련한 보험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주식·채권 및 사모펀드(PEF) 등 대체 투자에도 ESG 투자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엔 신재생에너지 산업 분야에 투자하는 ETF(상장지수펀드) ‘타이거 Fn 신재생에너지’를 선보였고, ESG를 테마로 한 ETF 2종을 일본 도교 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삼성자산운용은 20여 년 전부터 ESG 투자를 대비했다. 2001년 출시한 ‘삼성 에코(Eco) 펀드’는 국내 ESG 펀드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자산운용은 또 ESG 전담 팀을 꾸려 탈석탄 정책을 선언하는 한편, 국제 이니셔티브인 ‘기후 관련 재무 정보 공시에 관한 협의체’에도 가입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유명순 현 은행장을 비롯, 전체 임원 15명 중 여성 임원이 7명으로 비율이 47%에 이르는 등 국내 기업 중 양성평등의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지난해 6월에는 ESG에 대한 인식 제고와 관련, 상품 및 서비스 제공을 위해 ESG 협의회를 만들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2금융권 ESG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 금융사들은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S)을 통해 ESG 경영을 실천 중이다. 신협이 2018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7대 포용 금융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ESG 활동으로 손꼽힌다. 금융 취약층을 위한 대출 및 어르신과 저소득층에 특화된 여러 프로젝트는 금융과 비금융을 모두 포함한다.
새마을금고는 ESG 경영으로 ‘메이크 그린(Make Green) 새마을금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 친화적 경영을 실천하고, 그린 경제를 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새마을금고는 지난해 마포중앙도서관에 ‘MG 숲’을 조성했으며, 구직난과 생계 곤란을 겪는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웰컴저축은행은 최근 웰컴금융그룹 계열사와 함께 경상북도 울진 등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의 복구 활동과 재해민 지원을 위해 성금 1억870만원을 기탁했다. 2019년 강원도 동해안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해 성금 1억원을 기탁한 후 두 번째다. 웰컴저축은행은 지난해 초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그린오피스’ 구축에도 나섰다. 모든 영업망과 그룹 내부 보고 과정에서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OK저축은행은 환경부가 추진하는 무공해차 전환 프로젝트에 참여해 저축은행 업계 최초로 무공해차를 도입했다. 2030년까지 모든 업무용 차량을 전기·수소차 등 무공해차로 100%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또 무공해차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 시설도 구축할 방침이다.
☞ESG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첫 글자를 모은 말. 기업 경영을 할 때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의 요소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와 연·기금들이 투자 대상 기업을 정할 때 ESG를 주요 잣대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