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동부 에네르호다르에 위치한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에 4일 새벽 러시아군이 발사한 미사일이 떨어졌다. 발전소 감시카메라에 섬광이 잡힌 모습./로이터

날로 폭주하는 푸틴 앞에 세계 금융시장이 좌불안석이다. 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 이 여파로 일본 니케이225 지수가 2.23% 하락했고 대만 가권(-1.1%) 홍콩 항셍(-2.5%) 상해 종합(-0.96%) 한국 코스피(-1.22%) 등 아시아 주가가 일제히 퍼렇게 질렸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도 큰 구원이 되진 못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2일(현지시각) 하원에 출석해 다가올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를 ‘50bp 말고 25bp만’ 일단 올리겠다고 안심시키는 멘트를 했지만, 효과는 하루짜리였다. 이튿날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미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더 강화할 수 있다면서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 다시 시장에 어둠이 드리웠다.

다음 주 시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속 주시하면서 주요국 물가와 고용지표를 확인해야 한다. 9일 중국의 생산자·소비자 물가가 발표되고, 10일에는 2월 미국 소비자물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날 ECB(유럽중앙은행)의 금리 결정 기구인 통화정책회의도 열린다.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일인 9일은 증권시장이 열리지 않는다.

각 신용평가사로부터 투자부적격(정크) 수준까지 떨어진 신용등급을 받아들면서 러시아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맞은 점도 세계의 근심거리다. 이것이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 악영향도 주시해야 한다.


◇불에 기름 부은 원자재값상승폭, 1차 오일쇼크 버금가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번 주 세계 원자재 가격이 9.37% 올랐는데, 이 같은 주간 상승률은 1974년 이후 5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974년은 1차 오일쇼크 때다. 이때 상승률(9.67%)에 버금가는 상승세라는 것이다.

원유·천연가스 같은 에너지뿐만 아니라 밀·대두 등 곡물, 금·구리 같은 금속 등 33종 원자재 값이 급격히 올랐다. 4일 장중 배럴당 117달러선에 근접한 국제유가는 이제 최악의 경우 18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석유 수출국이자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국제유가, 금속, 농산물 등 원자재값이 고공행진하고 있다./EPFR, Bloomberg, 미래에셋증권


◇정크 등급으로 떨어진 러 신용등급…디폴트가 무서워

국제 신용 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3일(현지 시각) 러시아의 신용 등급을 한 번에 8단계 끌어내려 CCC-로 강등했다. 지난달 25일 BBB-에서 BB+로 낮춘 지 일주일 만에 8단계 하향조정,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을 높였다. 무디스와 피치 등 여타 신용평가사들도 2일(현지 시각) 러시아 신용등급을 6단계씩 낮추면서 정크 수준으로 깎았다.

미국 투자은행(IB) JP모건은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올 2분기 -35%, 연간 성장률은 -7%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 같은 연간 성장률은 1998년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금융위기 때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3일(현지시각) 오전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루블화 환율은 달러당 117.5루블, 유로당 124.1루블까지 치솟았다. 화폐가치 하락을 막으려고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종전 9.5%에서 20%로 끌어올렸지만, 흐름을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러시아 디폴트가 현실화할 경우, 경제적으로 밀접한 독일 등 주변 유럽국가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BIS(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외국 은행들의 러시아 시장에 대한 금융 익스포저(잠재 위험에 노출된 대출·투자액)는 작년 9월 말 기준 1200억 달러(약 14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외국인이 보유한 러시아 채권은 약 790억 달러(96조원) 수준이라고 JP모건이 추정했다.


러시아 루블화 지폐. /로이터연합뉴스

◇7%대 오르는 美 물가, 언제 잡히나

오는 10일 발표되는 미국 2월 핵심 소비자 물가도 관심거리다. 전월대비 0.6%가량 올랐을 것이라는 게 시장 예상인데, 이는 연율로 따지면 연 7% 수준이다. 파월의 인플레이션 걱정하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하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도 3일(현지 시각)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경제 전망에 불확실성을 가중한다. 그러나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통제 필요성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금리 인상이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ECB의 통화정책회의가 있을 예정인데, 시장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정책 변화는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