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주택 매매 잔금일을 앞두고 있는 양모(39)씨는 모자란 돈 4억원을 주택담보대출로 빌리려고 발품을 팔아 은행 지점들을 돌다가 깜짝 놀랐다.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 등 은행권 지점들은 대부분 3억원까지밖에 대출이 안 되는 데다 금리도 연 3%대 후반으로 높은 편이었다. 반면 상호금융권인 지역농협에서는 “대출 한도 5억원에 3%대 초반 금리로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상호금융은 지역 농·축협과 신협, 새마을금고 등 조합원으로 가입한 고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금융회사를 말한다. A씨는 “은행이 금리가 가장 싸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라며 “이제 상호금융권이 제1금융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의 강도 높은 가계 대출 규제로 은행권 대출 금리가 상호금융권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 데 이어 점차 그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4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역 농·축협 등 상호금융권 신용대출 금리는 지난해 11월 평균 4.17%로 집계됐다. 반면 같은 달 은행권 신용대출 금리는 평균 5.16%였다. 은행과 상호금융권의 신용대출금리 역전 폭이 거의 1%포인트까지 벌어진 것이다.
◇신용대출 이어 주담대 금리까지 역전
상호금융권과 은행의 대출 금리 역전 현상은 작년 2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상호금융권 신용대출 금리는 3.57%로 은행(3.61%)보다 0.04%포인트 낮아졌다. 이후 8월까지는 격차가 0.1~0.2%포인트 전후에서 맴돌았는데, 9월부터 금융 당국이 가계 대출 조이기에 나서자 9월 0.31%포인트, 10월 0.62%포인트 등으로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12월에는 1%포인트 이상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대출 금리 역전 현상은 2019년 5월에도 잠깐 나타난 적이 있는데, 지금처럼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격차가 커진 것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작년 10월부터는 주담대 금리마저도 역전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주담대 금리 역전은 10월 0.04%포인트(은행 3.26%, 상호금융 3.22%)에서 11월 0.20%포인트(은행 3.51%, 상호금융 3.31%)로 커졌다. 주담대 금리 역전은 통계 집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반대로 예금 금리는 은행이 상호금융권보다 높아졌다. 통상 “은행이 가장 안전한 금융사이기 때문에 이자가 제일 낮다”고 알려졌지만, 이 같은 금융 상식마저 파괴된 셈이다. 작년 10월 상호금융권 예금 금리(1년)는 1.34%로 은행(1.46%)보다 낮아졌고, 11월에는 격차가 0.31%포인트(상호금융권 1.41%, 은행 1.72%)로 더 벌어졌다.
◇은행 대출 규제가 빚은 풍선 효과
금융 당국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상호금융권이 적극적인 영업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대출 규제로 인한 풍선 효과라는 지적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 고신용자들이 대거 대출 한도가 높은 상호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린 데다, 은행들이 가계 대출 증가율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가산 금리를 급격히 올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대출 금리에 붙는 가산 금리는 지난 11월 3.1%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 기록을 세웠다.
대출 규제 이후 상호금융권의 대출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작년 10월 상호금융권 가계 대출 규모는 341조원으로 연 초(310조원) 대비 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은행권 가계 대출 규모는 856조원에서 907조원으로 5.9%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20년에는 은행 가계 대출 증가율(10.6%)이 상호금융권(9.7%)보다 높았는데, 추세가 뒤집어진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 역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강화되면서 올해부터 은행에서는 총 대출액이 2억원이 넘어가면 DSR 40%가 적용된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40%를 넘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반면 상호금융권 DSR 비율도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110%(기존 160%)로 은행의 2배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