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자금 조이기 속도를 높인 가운데 기업 실적이 양호한 저PER(주가수익비율)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15일(현지시각)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가속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는 가운데 거래 중인 뉴욕증권거래소 모습. /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속도를 두 배로 높이는 등 긴축정책의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기업 실적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가치주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자금 공급이 축소되면 그간 유동성의 힘으로 주가가 오른 종목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실적에 비해 덜 오른 종목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연준은 코로나 사태 이후 매달 채권을 사는데 1200억달러를 투입했다가 11월과 12월에는 1050억달러, 900억달러로 줄였다. 한 달에 150억달러씩 줄인 것이다. 그런데 연준은 15일 내년 1월부터는 300억달러씩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내년 3월에 양적 완화가 종료된다. 연준은 또 내년에 현 제로(0) 수준인 기준금리를 세 차례 올리겠다는 신호(점도표)도 공개했다.

저평가된 가치주를 분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가수익비율(PER)을 확인하는 것이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으로 한 회사의 주가가 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지 보여준다. 주가가 1만원이고 EPS가 1000원이라면 PER은 10배가 되는 식이다. PER이 낮다는 것은 기업이 거둔 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것을 뜻한다. 통상 PER이 10배 이하이면 저평가됐다고 본다.

◇금융·철강은 PER 낮고, 바이오·조선은 높아

16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PER이 코스피 평균(11.3배)보다 낮은 종목 수는 108개였다. 코스피 201종목에 대해 증권사 3곳 이상이 추정한 1년 뒤 주당 순익을 15일 종가로 나눈 결과다.

PER이 낮은 종목은 금융과 전통 제조업에 주로 분포했다. 가장 낮은 종목은 2.3배를 기록한 해상 운수 업체 HMM이었다. HMM은 지난 5월 말 최고가(5만600원)를 찍은 이후 지난 9월 파업 위기 등을 거치며 현재는 2만8000원 선에서 거래 중이다. 올해 코로나 고(高)운임 등의 영향으로 영업이익률이 1976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50%를 넘길 것으로 전망되는 등 실적도 개선세다.

대한제강(2.7배)·동국제강(3.6배)·현대제철(3.8배)·포스코(4.4배) 등 철강사는 코스피 평균 PER의 3분의 1 수준이다. 자동차·조선·건설 등 전방 산업의 철강 수요가 내년에도 이어져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점쳐진다. DGB(3.2배)·JB·BNK(이상 3.3배)·우리·하나(이상 3.8배) 등 금융주도 주가가 실적 대비 저평가된 것으로 나왔다. 중앙은행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들은 예금·대출 금리 차이를 통해 이익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 가운데 PER이 10배 이하인 경우는 SK하이닉스(9.5배)·현대차(8.5배)·기아(6.4배) 등이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금리 상승기처럼 실적 안정성이 중요한 시기에는 저(低)PER주가 각광받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바이오·2차전지 등 현재 실적보다 미래 성장성 때문에 주가가 크게 오른 종목들의 PER이 높았다. 바이오 업종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112.7배)·한올바이오파마(77.6배)·셀트리온(39.7배) 등이, 2차전지 업종에서는 포스코케미칼(68.3배)·SKIET(53배) 등의 PER이 높았다. 이 외 카카오(49.4배)·네이버(34.6배) 등 플랫폼 기업의 PER도 높았다.

◇이익 아닌 보유 자산으로 가치주 선별도 가능

저PER주는 현재는 혼돈스럽더라도 나중에 주식시장이 좋을 것으로 예상될 때 투자할 만하다. 수익성이 어느 정도 검증돼 있어서다.

하지만 PER만 보고 투자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아예 내년 이후 증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에는 저PBR(Price Bookvalue Ratio·주가순자산비율)을 참조하라는 말이다. PBR은 지금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산에 비해 주가가 어느 정도인가를 나타내는 수치다. 달리 말하면 PBR은 과거에 얼마나 많은 돈을 쌓아 놓았는가를 판단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저PBR주로는 한국전력(0.2배)·롯데쇼핑·DGB금융·현대두산인프라코어·BNK금융·현대제철·기업은행(이상 0.3배) 등이 꼽혔다. 그러나 저PBR주의 경우에도 자산에 파생상품 등 불확실성이 큰 자산이 포함돼 있으면, 어느 날 갑자기 자산 가치가 급락할 수 있으므로 잘 살펴보고 투자해야 한다.

☞PER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 주가의 적정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PER이 낮을수록 이익에 비해 주가가 낮기 때문에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눠도 같은 값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