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은행의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에서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은행에서 증권사로의 IRP 이전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18일 금융위원회는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은행이 증권사 거래 시스템을 통해 ETF 시세를 제공하고 실시간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상 허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또 30분 등 일정 시차를 두고 ETF 거래를 하는 것 역시 허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은행 IRP 계좌에서는 총 5592억원의 자금이 순유출됐다. 반면 증권사 IRP 계좌로는 4841억원이 순유입됐다. 작년 한 해 동안 증권사로 순유입된 자금(3209억원)보다 더 많은 자금이 이동한 것이다. 이런 IRP 머니 무브(money move·자금 이동)가 발생한 주 원인은 증권사 계좌에서만 ETF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금융 당국이 은행 IRP의 ETF 실시간 거래를 허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머니 무브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ETF 투자 가능한 증권사 IRP 인기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박영호 연구위원의 ‘코로나 19가 가져온 퇴직연금 시장의 5가지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퇴직연금을 통한 ETF 투자액은 지난해 8084억원으로 2019년(1836억원)의 4.4배로 급증했다. 그런데 올해는 1분기에만 1조3024억원으로 불어나 지난해 연간 실적을 훌쩍 넘었다.

ETF 열풍으로 은행은 울상이었던 반면, 증권사는 반색했다. 신한은행(1450억원), 국민은행(1171억원), 우리은행(1155억원), 하나은행(782억원) 등 주요 은행에서는 IRP 자금이 순유출됐다. 반대로 미래에셋증권(2942억원)과 삼성증권(1321억원)으로 IRP 자금이 순유입됐다. IRP 수익률도 ETF 투자가 가능한 증권사 쪽이 높았다. 미래에셋증권은 작년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1년간 IRP 수익률이 7.6%였다. 삼성증권도 7.2%였다. 교보생명(4%)이나 하나은행(3.8%) 등 다른 금융 업종에 비해 수익률이 높았던 것이다.

신규 IRP 계좌 중 증권사에서 개설되는 계좌의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신규 IRP 계좌 중 증권사에서 개설된 계좌의 비율은 3%에 불과했지만, 지난해(9.4%)와 올해 1~5월(18.2%)에는 비율이 많이 높아졌다. 20대의 경우에는 지난 1~5월 증권사에서 개설된 IRP 계좌가 1만4727개로 작년 한 해 전체(1만3959개)보다 많았다.

◇세제 혜택 누리며 노후 대비하는 IRP

증권사 IRP로 해외투자 ETF에 투자하면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주리 삼성증권 연금마케팅팀장은 “일반 증권 계좌로 해외투자 ETF에 투자하면 매매 차익에 대해 15.4%의 배당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IRP로 투자하면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3.3~5.5%의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고 했다. 최근 삼성증권이 자사 고객의 IRP 계좌 내 ETF를 분석한 결과 ‘TIGER 미국 나스닥 100′, ‘TIGER 차이나전기차 SOLACTIVE’, ‘KODEX 미국 FANG 플러스’ 등 해외투자 ETF가 가장 많았다.

IRP 연간 납입액 중 최대 700만원까지는 16.5%(총 급여 5500만원 초과 시 13.2%)를 세액공제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김민정 미래에셋증권 연금컨설팅팀 세무사는 “50세 이상인 경우에는 작년부터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연간 9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해준다”며 “다만 연간 총급여가 1억2000만원을 초과하거나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라면 50세 이상 추가 세액공제 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했다.

만기가 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금액을 IRP 계좌로 입금하면, 입금 금액의 10%(최대 300만원)를 추가로 세액공제받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ISA를 통해 모은 자금을 IRP에 입금해 ‘노후 대비’를 하는 것을 권장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