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저작권, 강남 빌딩에 이어 한우 등 가축까지 ‘조각 투자’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각 투자는 개인이 혼자서 투자하기 어려운 고가의 자산들을 지분 형태로 쪼갠 뒤 여러 투자자가 공동으로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소액으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보려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신시장을 개척해보려는 핀테크 업체들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관련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6일 핀테크 업체 스탁키퍼에 따르면, 한우 조각 투자 플랫폼 ‘뱅카우’가 지난달 23일 진행한 3차 펀딩은 개시한 지 세 시간 만에 투자자 471명에게서 1억5300만원을 모집했다. 투자금은 한우 32마리 사육비 등으로 쓰이고, 투자자들은 약 2년 뒤 경매를 통해 소가 판매되면 지분만큼 투자금과 수익금을 받는다.
◇조각 투자 주도하는 MZ세대
작년 10월 설립된 스탁키퍼가 운영하는 뱅카우는 지난 5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1차 공모를 진행했다. 당시 투자자 141명에게서 9918만원을 모집했는데, 투자자 중 30대가 48.9%고 20대가 33.3%였다. 10명 중 8명 이상이 MZ세대였다. 7월에 한 2차 공모에서도 2030 비율은 81.2%에 달했다.
뱅카우는 농가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모바일 기반 플랫폼이다. 투자금은 최소 4만원이고, 최대 투자금 한도는 없다. 축산물품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우 경매 가격은 66.6% 상승했지만 한우 투자 시장은 고액 자산가나 기관 투자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를 4만원 이상이면 투자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이다. 뱅카우 측은 투자금 회수 기간을 2년가량으로 보고 있으며, 한 마리당 평균 수익률은 19.7%로 전망했다. 대출 등에 의존했던 농가 입장에선 한 마리당 1000만원가량 드는 사육비를 이자 없이 빌려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일찌감치 새로운 조각 투자 시장을 개척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핀테크 업체들도 있다. 음악 저작권을 쪼개 투자하는 플랫폼 ‘뮤직카우’는 2018년 출범 후 회원 수가 50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 20대와 30대 비율은 각각 36%, 34%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강남 부동산을 조각 투자 대상으로 삼은 ‘카사’도 8일 세 번째 공모를 진행한다.
조각 투자 시장이 확대하면서 관련 업체 간의 고객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조각 투자 시장은 진입 장벽이 사실상 없어 후발 업체가 언제든 뛰어들 수 있다. 예컨대 카사의 경우 2019년 금융위원회에서 한시적으로 규제를 면제해주는 ‘혁신 금융 서비스(샌드박스)’로 지정받아 사업을 시작했는데, 올해 2~3개 업체가 같은 사업 구조로 샌드박스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사는 3차 공모에 맞춰 100만원 이상 투자금을 예치한 고객에게 1만5000원을 지원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투자자 보호 장치 잘 살피고, 원금 손실 감안해야
이처럼 조각 투자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대부분 신생 업체들이다 보니 투자자 보호 장치와 내부 시스템이 미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은행들도 핀테크 업체들과 함께 조각 투자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금융 당국의 제지를 받고 중단하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1월 서울옥션블루와 미술품 조각 투자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7월 중단했다. 금융 당국이 투자자 보호에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유사 서비스를 준비하던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서비스 출시 계획을 미뤘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일부 조각 투자의 경우 P2P(개인 간 대출)와 구분이 어려운 데다 투자금도 보장이 안 된다”며 “그런데 대부분 업체는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안전한 자산이라고만 홍보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