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짜리를 키우는 싱글맘 이모(36)씨는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 왔다. 지난해부터 코로나 탓에 쉬는 날이 많아졌다. 그는 직업이 불안해 은행 대출은 거절당했고 대부 업체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를 연체할 위기에 몰려 다른 2금융권 대출로 빚을 돌려막다 포기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저신용자용 정책 서민 대출인 ‘햇살론’으로 1000만원을 빌렸지만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 이자도 못 갚고 있다. 그는 “불법 사금융이 아니면 이제 정말 돈 빌릴 곳이 없다”고 했다.

서울 중구 명동의 영업종료한 가게 안에 대출 전단, 고지서 등이 널브러져 있다. 자영업자의 은행 대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67조원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전 동기보다 84%나 많은 것으로 그만큼 영업 부진에 따른 대출 의존도가 커졌다는 이야기다. /연합뉴스

1년 반 넘게 반복되는 코로나 사태로 길거리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불어나는 빚을 감당 못 하고 금융 절벽으로 내몰리는 서민이 늘고 있다. 신용도가 낮은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는 정책 금융 대출은 올해 들어서만 3000억원가량 부도가 났고, 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은행권 대출 상환 유예 규모도 크게 불어나는 중이다.

11일 서민금융진흥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소금융·햇살론 등 정책 서민 대출 대위변제액(대출자가 갚지 못해 정부와 금융사가 대신 갚아준 금액)은 2915억원에 달했다. 작년 상반기(1780억원)보다 64% 늘었다. 이 중 최저신용자에게 내주는 ‘햇살론17′의 대위변제액만 1209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한 해 수준(769억원)을 넘어섰다.

코로나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소상공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만기를 연장하거나 원리금 상환을 유예한 규모는 5대 시중은행에서만 올해 들어 46조원 불어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코로나가 진정돼도 빚을 갚기 어려운 잠재적 신용 불량자들이다. 소득이 줄자 빚을 내 버티고, 반복되는 코로나 재확산에 버는 돈이 더 감소해 빚을 자꾸 더 낼 수밖에 없는 ‘눈덩이 대출’의 굴레에 빠져 있다. 이런 ‘빚의 시한폭탄’이 터지면 금융으로 위험이 번져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경고한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 같은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창현 의원은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대출 난민이 폭증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대출을 늘리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대출 부도를 낮출 대안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알바도 끊겨… 年 60% 일수 돈 쓰며 ‘빚으로 빚 갚기’

서울 강남에서 미용용품 가게를 하는 김모(35)씨는 코로나로 매출이 줄어 직원 4명 중 3명을 내보냈다. 지난 7월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작되자 매출은 다시 30% 정도가 줄었다. 그는 저축은행에 이어 대부 업체에서 돈을 빌렸고 카드론까지 받아 어느새 대출이 7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는 “이제 카드론도 꽉 찼고 제도권 대출은 한도가 다 차서 정부가 지원하는 소상공인 대출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1000만원 정도 대출을 받아 월세 2개월치와 직원 월급을 주고 나면, 이젠 정말 끝”이라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의 폐점한 매장 -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서 폐점한 매장의 모습.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오는 18일까지 연장되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미소금융과 햇살론 등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정책금융대출에서 부도 금액이 3000억원에 육박하며, 전년 동기 대비 64%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운호 기자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하는 80대 A씨는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대출은 엄두도 못 내고, 대부 업체와 정부 정책 자금을 빌려 쓰다 갚지 못했다. 더 이상 돈 빌릴 곳이 없는 그는 일수 대출로 버티고 있다. 100만원을 빌리고 하루에 이자만 2000원씩 낸다. 연 이자로 환산하면 60%가 넘는 초(超)고금리지만 방도가 없다고 했다. “금리 계산하면 스트레스받아요. 신경 안 쓴 지 오래됐습니다. 물건 떼어 와도 얼마 팔리지도 않는데, 일수 갚을 정도만 일단 팔고 버티는 거죠.”

◇불법 일수 대출받아 연명하는 서민들

코로나 장기화와 반복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더 비싸고 위험한 사채 등으로 밀려나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피해를 막는다며 정책 서민 대출을 늘리고 있지만 ‘급한 불’을 끄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지난달 대부업 등의 최고 금리가 연 20%로 낮아지면서 저신용자들은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1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햇살론·미소금융 등 정책 서민 대출을 이용한 취약 계층은 40만9287명으로, 작년 상반기(38만7035명)보다 6%(2만2252명) 늘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4조2146억원(2020년 상반기)에서 4조6823억원(2021년 상반기)으로 11% 증가했다.

부도 처리 된 서민금융상품 금액 추이, 소상공인 금융 지원 프로그램의 부실액 추이

코로나로 소득이 줄어든 영세업자·실직자 등 서민들은 은행에서 2금융권으로 밀려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정책 자금 대출을 받고 사채로까지 내몰리는 상황이다. 지난해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박모(37)씨는 햇살론(저신용자를 위한 정부 대출)을 받았지만 지난 4월부터 이자를 연체하고 있다. 음식 배달과 대리운전 같은 단기 아르바이트로는 생활비 충당도 되지 않는다. 그는 “부모님이 몸이 안 좋아 사실상 내가 가장인데, 햇살론마저 연체되니 이젠 어디서 돈을 빌려야 하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낮은 금리의 대출을 점점 더 높은 대출로 ‘돌려막기’ 하다가 한계에 봉착해 부도를 내고 신용불량자 위기에 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상남도에서 찜닭 가맹점을 하는 정모(37)씨는 “소상공인 지원 대출을 받아 4개월 동안 밀렸던 대출을 갚았다. 대출로 대출을 막다 보니 1000만원, 2000만원은 금방 사라지더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빚 내서 빚 갚기’를 반복하며 총 1억원 정도를 빌렸다고 했다. 그는 “폐업을 하고 싶어도 이자라도 갚아야 하니, 몇 푼이라도 벌려고 영업은 계속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난다 해도 언제 이 빚을 다 갚나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많아야 2000만원 정도 되는 정책 서민 대출로는 서민들이 ‘빚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부 등이 대신 갚아준 부도액 14배 증가

정책 서민 대출은 부실률 증가세가 가파르다. 서민금융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햇살론 등 정책 서민 대출에서 부도가 발생해 정부가 대신 갚아준 돈은 2915억원에 달한다. 2018년엔 3816억원, 2019년엔 3805억원이었다가 2020년 4375억원으로 급증했는데 올해는 6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 지원 대출 부도액도 급등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소상공인 2차 금융 지원 프로그램의 대위변제액(대출자가 갚지 못해 정부와 금융사가 대신 갚아준 금액)은 지난해 12월 14억5000만원에서 올해 6월 212억원으로 6개월 만에 14배가 넘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대출에 의존하는 사람과 대출을 갚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모두 증가하는 것은 금융 정책으로 자영업자나 서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금융 정책에 의존하기보다는 복지 정책이나 일자리 정책과 연계해 저소득층의 재기를 돕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