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서 찜닭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37)씨는 신용점수가 최근 840점에서 760점으로 급락했다. 캐피털사 두 곳에서 800만원을 빌리면서 ‘제2금융권 다중채무자’가 되자 3일 만에 점수가 뚝 떨어졌다.
정씨는 “정부 지원 자금을 받으려면 744점까지 떨어뜨려야 돼서 일부러 점수를 낮추고 있다”며 “아직 점수를 더 낮춰야 해서 일부러 연체를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정씨가 받으려는 지원금은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중소벤처기업부의 ‘저신용 소상공인 융자’다. 신용점수 744점 이하 소상공인에게 연 1.5%의 낮은 금리로 최대 1000만원을 빌려준다. 8월부터는 대출 한도가 2000만원으로 확대된다. 조건이 좋아서 이 대출을 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신용점수를 떨어뜨리는 자영업자들이 생기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화장품 가게 사장 이모(45)씨 역시 “카드론으로 400만원, 현금서비스로 120만원, 200만원씩 받아 890점에서 742점까지 낮출 수 있었다”며 “당장 정부 지원 자금 1000만원이 필요해서라기보단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자 싼 대출을 받아 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79만명이 가입해 있는 한 정보 공유 사이트에는 이달에만 “신용점수를 낮추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글이 55건 올라왔다. 한 자영업자가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왜 신용점수가 그대로인지 모르겠다”고 글을 올리자 “카드 5개로 카드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소액으로 여러 번 해서 5일간 130점을 낮췄다”,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는 3일이면 점수 반영되니 빨리 받아라”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5월과 6월엔 관련 글이 각각 2건씩 올라오는 데 그쳤다.
중기부 관계자는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하겠나 싶다”라며 “하지만 신용점수를 한번 낮추면 올리기 어려운데다 다른 대출 금리가 올라가 부담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지원 제도를 만들 때 일부러 신용점수를 떨어뜨릴 수 없도록 1년 전 데이터를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정부도 여러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코로나 사태 이후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전체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31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1조8000억원(18.8%)이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 잔액은 7%, 중소기업은 12.8%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자영업자의 부채 증가는 압도적이다.
설상가상 금리가 인상되면 자영업자의 이자 상환 부담을 더 커지게 된다. 한국은행이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 이자부담은 5조2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