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45)씨는 15일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IT 기업 텐센트 주식을 800만원어치(100주) 샀다. 올 초 국내 증권사로부터 중국 투자 종합자산관리서비스를 받았는데 수익률이 마이너스 25%가 나자 직접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씨는 “첫 해외 주식 직접 투자인데 주가가 많이 떨어져 상승 가능성이 큰 중국 기술주를 선택했다”고 했다. 최근 이씨와 같은 ‘중학 개미(미국이나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디디추싱, 텐센트 등 중국 기술주 매수에 대거 나서고 있다. 1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국내 투자자의 중국 주요 기술주 순매수 규모는 1억2000만달러(1370억원)에 달한다. 4월(2210만달러)과 비교했을 때 5.4배나 늘어났다. 중학 개미들은 중국 당국의 규제 등으로 주가가 하락하고 있어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중국의 기술주 규제가 더 강해질 수 있고 이럴 경우 주가가 추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 기술주 저가 매수 나선 중학 개미
중학 개미들은 지난달 30일 뉴욕 증시에 상장한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 주식을 1520만달러(174억원)어치 순매수했다. 디디추싱은 가입자가 6억명에 달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을 넘는 스타트업)이지만, 중국 정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미국 증시에 상장해 철퇴를 맞았다. 상장 사흘 만에 중국 안보 당국 조사 대상이 됐고, 중국 내 앱 마켓에서 삭제 조치를 당했다. 상장 첫날 공모가(14달러)를 넘어 18달러까지 올랐던 주가는 지난 12일 11.16달러로 일주일 만에 40% 가까이 급락했다가 현재 12.36달러로 소폭 회복했지만, 여전히 상장 당일 고점 대비 31% 이상 하락한 상태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텐센트홀딩스의 경우는 6월 14일부터 지난 15일까지 한 달간 3850만달러(43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ETF(상장지수펀드)를 빼면 개별 해외 주식 종목 중 6번째로 많은 순매수 규모다.
마윈(馬雲)이 창업한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경우는 지난 한 달간 3039만달러(347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해외 주식 순매수 기준 8위다. 알리바바의 주가는 지난 4월 중국 정부가 중국 역대 최대 규모의 반독점추징금(3조1000억원)을 부과한 뒤 하락세다. 작년 10월 뉴욕거래소에서 317달러를 넘었지만, 최근 214달러로 33% 가까이 하락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검색 업체 바이두도 한 달간 1038만달러(11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 밖에 홍콩 증시의 화홍반도체(321만달러)와 넷이즈(295만달러) 등도 중학 개미들의 투자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 규제 확대 위험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규제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 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유명 펀드 매니저인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3일 투자 세미나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거둔 엄청난 성공이 정부 규제로 빛을 잃고 있다”며 “중국 빅테크가 세계로 뻗어 가는 과정에서 국가 안보 문제가 지속적으로 생기고, 이는 이 기업들의 성장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아크인베스트의 주요 상품인 ‘아크이노베이션 ETF’는 중국 비중을 지난 2월 8%대에서 최근 1% 미만으로 확 줄였다.
지난 8일 판이페이(范一飛) 인민은행 부행장은 “독점 현상은 (알리바바 계열사) 앤트그룹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있다”며 “앤트그룹에 가한 조치를 다른 회사들에도 적용할 것이고 조만간 이런 상황을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판 부행장이 독점 문제 추가 조사를 예고함에 따라 텐센트가 다음 대상이 될 거라는 관측이 중국 내에서 제기된다. 텐센트는 중국 메신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위챗(微信)을 활용한 위챗페이를 운영 중이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많은 (중국 정부의) 규제책이 발표됐지만 추가 규제 발표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