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엔터주가 급등하더니 오늘은 금속이네요. 어떤 업종이 오를지 알 수가 없으니,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는 것 같아요.”

뚜렷한 주도주 없이 업종별로 빠르게 순환하는 상승장이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할 때 어느 구멍에서 두더지가 고개를 내밀지 알기 힘든 것처럼 어느 업종이 갑자기 주목 받을지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워낙 큰 데다 기업들의 실적 전망도 좋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속도 빠른 순환매 장세에서는 매매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오판하기가 쉽다. 이럴 땐 돈 냄새를 잘 맡는 자산 운용사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끊이지 않는 펀드 환매로 종목 비율을 줄이기 바빴던 운용사들이 이달 들어서는 새로 대량 매수하는 종목을 발표하는 등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사들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는 것은 관심을 갖고 보유한다는 의미”라며 “다만 운용사는 장기적으로 보고 종목을 사들이기 때문에 단기 매매로 따라 해서는 수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22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3240.79)보다 23.09포인트(0.71%) 오른 3263.88에 마감했다.

2차전지, 상장 리츠, ESG 등 다양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운용사들의 순자산 규모는 18일 기준 206조원으로, 1년 전에 비해 45조원 늘어났다. 탄탄한 실탄으로 무장한 운용사들은 새로운 유망 종목을 발굴해 5% 이상 과감히 사들이고, 이미 보유하고 있던 종목 비율도 늘려가고 있다.

순자산 기준 운용 업계 1위 삼성자산운용은 이달 초 피엔티와 에코프로 지분을 5% 이상 사들였다고 공시했다. 피엔티는 2차전지 음극 및 분리막 소재 업체이고, 에코프로는 2차 전지 양극재 업체다. 삼성운용 관계자는 “최근 1년 동안 KODEX 2차전지산업 상장지수펀드(ETF)엔 1조원 넘게 돈이 몰렸는데 해당 펀드가 운용 목적에서 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수익률이 89%에 달하는 KODEX 2차전지 산업 ETF는 디에이테크놀로지, 씨아이에스와 같은 2차 전지 관련 기업들의 지분도 5% 이상 들고 있다.

미래에셋운용은 이달 초 상장 리츠(REITs·부동산 자산 신탁) 2개를 5% 이상 사 모았다고 공시해 눈길을 끌었다. 리츠는 투자금을 모아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배당하는 상품을 말한다. 미래에셋운용이 사들인 상장 리츠는 ESR켄달스퀘어리츠(물류 센터)와 제이알글로벌리츠(벨기에 빌딩)다. 미래에셋운용 관계자는 “6개의 미래에셋 리츠 관련 펀드 규모가 1년 전 843억원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2134억원까지 커졌다”면서 “노후 자금을 굴리는 연금 등 수요는 많은데 아직 국내 상장 리츠 시장은 크지 않다 보니 특정 종목을 많이 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주가가 238% 오른 KTB투자증권은 KB자산운용이 지난 3일 7.29%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면서 주요 주주에 올랐다. KB운용 관계자는 “본업이 좋고 자회사 지분 등 플러스 요소까지 있는데, 가치 대비 저평가됐다고 평가하고 매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 명신산업 지분도 22% 선까지 늘렸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춘 종목 매수도 눈에 띈다. 10조원을 굴리는 독립계 운용사 트러스톤운용은 지난 15일 섬유화학 기업인 태광산업 지분을 5.01%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또 그 전날에는 의류 생산 업체 BYC의 지분을 종전 5.79%에서 6.8%까지 늘렸다고 공시했다. 트러스톤운용 관계자는 “태광산업과 BYC는 건전한 주주 활동을 통해서 ESG 개선 여지가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매수했다”고 말했다.

영화 '빅쇼트'에서 투자자 마이클 버리 역할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이 사무실에서 양 손에 드럼 스틱을 든 채 록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해외 자산 운용사들도 출동

치과용 의료 기기 생산 업체인 레이의 소액주주들은 이달 새로 등장한 큰손 주주 소식에 반가워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빅쇼트’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사이언에셋)가 레이 지분을 4.85% 취득했다고 최근 공시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레이 주가는 지난 17일 장중 3만62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4일엔 미국 라자드에셋이 NHN한국사이버결제를 5.14%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라자드에셋은 작년 4월 주당 3만5000원대에 처음 매수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주식을 매집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종가는 5만7300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