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의 변방으로 인식돼온 한국이 미국 금융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보람입니다.”
4조원가량의 자금을 미국과 한국에서 운용하는 사모펀드 EMP벨스타는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유동성(자금) 공급 정책에 적극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 연준이 공개한 ‘자금 공급 프로그램(TALF)’ 집행 실적에 따르면, TALF로 공급된 자금 44억달러(약 5조원) 가운데 59%인 26억달러(약 3조원)가 EMP벨스타를 통해 집행됐다. 블랙록(1억1350만달러·2.6%)이나 베어링스(1억1000만달러·2.5%) 등 글로벌 투자사들을 압도하는 규모다. TALF는 코로나로 얼어붙은 자금시장을 살리기 위해 연준이 금융회사를 통해 채권을 사주는 프로그램이다. 금융사들은 경쟁입찰 방식으로 연준 자금을 받을 수 있다.
EMP벨스타의 이준호 공동 대표는 “한발 빨리 의사 결정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했다. 핌코 등 글로벌 대형 운용사들은 투자자금 유치를 위한 설명회 등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 연준 입찰에 제때 참여하지 못한 반면, EMP벨스타는 TALF 프로그램 시작전에 국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과학기술인공제회·롯데손보 등으로부터 미리 확보한 5억8000만달러의 ‘시드 머니(종잣돈)’가 큰 힘이 됐다. 이 돈을 기반으로 미 연준에게서 약 1% 금리로 20억2000만달러(2조2600억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대표는 “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당시에도 TALF 프로그램이 가동됐는데, EMP벨스타는 총 30억달러를 투자해 참여한 금융사 가운데 7위를 기록했다. 이때 EMP벨스타는 금융감독원에 등록한 국내 1호 역외펀드가 됐고, 연 20%의 수익률을 거뒀다.
이 대표는 “1차 TALF에 참여한 펀드매니저가 그대로 회사에 있었고, 당시 수익률도 좋아서 국내 금융사들이 큰 고민 없이 투자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골드만삭스 출신 대니얼 윤 회장과 EMP벨스타를 공동 창업했고, 미국 투자 기회에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본사를 뉴욕에 뒀다. 미국 뉴욕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회계법인 삼정KPMG에서 근무하면서 평소 한국 자본의 해외 진출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그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어려워진 한국 기업 자산을 사서 이익을 낸 해외 자본들을 보면서 거꾸로 우리나라가 미국 기업 자산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역발상을 했다”며 “한국 금융이 글로벌화하는데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