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간의 리딩뱅크(1등 은행) 경쟁은 이제 무의미해졌습니다. 은행도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플랫폼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겁니다.”

20여년간 IT업계에서 일하다가 지난 4월부터 KB국민은행의 IT 인력을 이끌고 있는 박기은 테크기술 본부장. /국민은행 제공

공대를 졸업하고 20여년간 IT업계에 몸담았던 박기은 전 네이버클라우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 4월 KB국민은행으로 이직했다. 이 은행에서 테크기술 본부장(전무)을 맡아 600여명의 은행 IT인력들을 이끌고 있다. 박 본부장은 “사실 은행에 오기 전까진 금융의 ‘금(金)’자도 몰랐다”며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의외로 전 산업군 중에 꾸준히 시대에 맞춰 변화해 온 곳이 금융이었고, 해볼 수 있는 게 많을 수 있겠단 생각에 은행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은 느린 듯 보이지만, 시대 변화에 발맞춰 꾸준히 변신하는 산업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은행 거래를 하면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거래내역을 통장에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국민은행은 올해 10월 은행 지점에 CCTV(폐쇄회로TV) 등 영상 시스템으로 고객의 이동 경로와 지점내 혼잡도를 분석해 대면 업무를 효율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그는 “고객들이 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구현하는 능력이 IT기업보다 부족한 것일뿐, 기술력 측면에선 금융사도 이미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금융업 무한 경쟁시대에 누가 고객들과의 접점을 더 많이 차지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봤다. 즉 누가 더 편리하고 쓸모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전무는 “네이버, 카카오, 구글 등 막강한 플랫폼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들이 고객들을 모두 잡고 있다보니 은행이 좋은 금융상품을 내놓는다고 해도 이들을 거치지 않고는 고객에게 접근하기 힘들어졌다”라며 “은행도 결국 제대로 된 플랫폼을 만들어 고객과의 접점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업은 당국의 규제가 강하다. 또 금융상품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 전무는 이런 금융업의 특성이 거꾸로 빅테크와 경쟁할 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금융업은 할 수 있는 일을 정해두고 그 외의 일은 못하게 해놨기 때문에 은행원들이 창의적인 일을 하기가 어려웠죠. 하지만 규제에서 벗어나면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빅테크기업과 디지털 인재 확보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은행권의 느린 채용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은행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을 뽑는 대규모 공개채용 문화가 남아있다보니 직원 한명을 뽑더라도 6개월 가량 걸린다”며 “아무리 늦어도 1~2개월 안에 채용을 마무리해 필요한 곳에 투입시키는 IT업계와 비교하면 상당히 더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