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이 채용 인력의 절반 이상을 IT(정보 기술)에서 뽑는다고?”

국내 리딩뱅크인 KB국민은행이 지난 8일 ’2021년 상반기 채용 계획'을 발표하자 은행권이 술렁였다. KB국민은행은 채용 인원 200명 가운데 최대 170명 가량을 IT와 데이터 부문에서 뽑기로 했다. 전통적인 은행원 분야인 경영관리 쪽 채용 계획은 10명 안팎에 불과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인력의 무게중심이 창구나 경영관리 직원에서 IT로 넘어가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원래 KB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에 디지털 인재 80여명을 예년처럼 수시로 뽑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이 4월 들어 급히 수정되기 시작했다. 케이뱅크, 카카오뱅크에 이어 토스뱅크까지 은행업 인가를 받게 되면서 모바일과 인터넷상에서 은행들의 총성 없는 전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모바일상에서는 전통 금융사 중 ‘1위 은행’이라는 명분만으로 기존 고객들을 붙잡아 두기가 불가능해졌다”며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말끔한 차림의 ‘넥타이 부대’보단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이를 디지털상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개발자 특공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KB국민은행은 IT 채용 인원을 당초 계획의 2배 이상으로 늘리고, 채용 방식도 공개 채용으로 전면 전환했다.

◇'빅테크 인력 모셔오자' IT 인재 확보 혈안

KB국민은행은 디지털 인력 공채에 앞서 경영진에 빅테크 출신 인재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삼성SDS 등에서 빅데이터를 담당했던 윤진수 부행장을 2019년 영입했고, 작년엔 네이버 출신 성현탁 부장을 데려와 부동산 정보 플랫폼 리브부동산을 출시했다. 이 앱은 출시된 지 3개월 만에 100만 고객 유치에 성공했다. 올해 4월엔 네이버클라우드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박기은 전무를 600여명의 개발자를 이끄는 테크기술 본부장 자리에 앉혔다.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KT빅데이터 사업단 출신 김혜주 상무와 SK에서 AI 업무를 담당했던 김준환 상무를 영입했고, 올해 4월엔 삼성SDS 김민수 AI선행연구랩장을 데려와 신한은행 통합AI센터를 맡겼다. 올해 배달업 사업 진출을 선언한 신한은행은 최근 비금융 신사업을 추진하는 ‘O2O(Online to Offline) 추진단’을 신설해 O2O개발자 채용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150여명의 디지털 인재를 채용한 이 은행은 올해는 200여명을 더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배달 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 출신 김소정 부행장에게 미래금융본부를 맡겼으며, NH농협은행도 삼성SDS에서 이상래 디지털금융 부행장을 끌어왔다.

◇기존 은행원도 디지털 인재로 전환

은행들 간의 IT 인재 영입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기존처럼 목 좋은 곳에 지점을 확보해 고객들을 끌어오는 전통적 영업 전략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은행 점포 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해 국내 은행 점포 수는 6405개로 1년 만에 304개나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은행원들의 역할도 줄었다. 작년 6월 기준 은행권 임직원 수는 12만2004명으로, 2016년(13만6353명)과 비교하면 4년 만에 1만4349명(10.5%) 감소했다.

은행들은 남아 있는 은행원들도 ‘디지털 인재’로 전환시키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내부 직원 4000여명을 2025년까지 디지털 인재로 양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한은행은 작년 한 해동안 1만3000여명의 직원에게 코딩 교육 등 디지털 연수를 진행했다. 하나은행은 카이스트와 디지털 인재 양성을 위한 ‘디지털 워리어(Warrior·전사) 프로그램’을 개발해 최근 연수 대상 직원 40명을 선발했다.

NH농협은행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데이터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는데, 올해까지 1000명의 은행원을 ‘데이터 전문가’로 변모시킬 예정이다.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도 작년부터 직원 연수 프로그램에 빅데이터 과정을 신설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의 디지털 변신은 점포보다 모바일·인터넷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며 “핀테크 기업과의 경쟁까지 심화되면서 은행들의 변신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