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입사 13년 차 양모(45)씨는 2018년 집안 사정 때문에 목돈이 필요했는데, 은행 대출이 많아 제2금융권에 손을 벌려야만 했다. 한 저축은행에서 이자 12%에 5000만원을 빌렸다. 작년 3월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한 그는 지난달 친구로부터 “승진했으니 금리 인하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양씨는 저축은행에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해 이자를 9%대로 낮춰, 1년에 600만원씩 내던 이자를 450만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가계 부채가 1765조원으로 사상 최대로 불어난 상태인데,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유행)에서 벗어나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이라 금리가 오를 수 있어 양씨처럼 ‘금리인하요구권’을 활용해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해졌다. 2002년 도입된 금리인하요구권은 이후 10년간 유명무실하게 운영됐지만, 2019년 6월 법제화가 되면서 사용할 만해졌다.

◇새마을금고·신협 등에도 요구할 수 있어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리인하요구권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은 물론 지방은행과 국책은행에서도 모두 행사할 수 있다. 은행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서 쓸 수 있다. 2019년 6월 법제화됐고, 지난해 11월부터는 은행 영업점 방문 없이 모바일, 인터넷 뱅킹 등 비대면 방식으로도 인하 신청을 할 수 있다.

새마을금고, 신협 등 상호금융권에서도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상호금융권의 금리인하요구권은 아직 법제화되지 않아 현재 여당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5가지 조건 중 한 조건만 갖춰도 신청 가능

금리인하요구권 신청 조건은 금융사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신용점수가 오르거나 부채 감소 ▲직장 내 직위 상승 ▲취업이나 직장 변동 ▲연 소득 증가 ▲해당 금융사 거래 실적 변동 등 5가지다. 금융사들은 “금리 인하 요구를 할 수 있는 여러 조건 중 신용 점수 상승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 점수는 무엇보다 연체를 최소화하고 매달 무리 없이 상환할 수 있을 정도로 신용카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2금융권 대출이 있다면 신용 점수 하락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금 서비스나 카드론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승진으로 대출을 받은 시점보다 자신의 직위가 상승했거나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도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직장 변동이 있을 때도 금리 인하를 요구해볼 수 있는데 통상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비상장기업에서 상장기업으로 이직했을 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취업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연 소득이 늘어났을 때도 요구권 행사 자격이 된다. 금융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연 소득이 대출을 받은 시점보다 20% 이상 늘어났다면 신청할 수 있다.

◇주담대도 요구할 수 있어

신용대출은 금리인하요구권을 쓸 수 있지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제외되는 은행도 있다. 씨티은행이 대표적이다. 은행 홈페이지에 “주담대는 금리인하요구권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주담대는 신용등급이 금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 은행 주담대 상품설명서는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은행은 2020년 4월부터 주담대에 신용점수를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후 주담대에서만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은행별 제각각 기준 통일될 예정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에 접수된 64만6870건의 금리인하요구 중 18만2710건(28.2%)만 받아들여졌다. 저축은행은 2만8102건 중 2만759건(73.9%)이 수용됐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업권이나 금융사마다 기준이 달라 같은 조건이라도 받아들여질 수도, 거부될 수도 있다. 요구되는 자료도 다르기 때문에 금융사별로 확인이 필요하다.

금융 당국과 은행권에선 은행별로 달리 운영되는 금리인하요구권 기준을 맞추는 논의를 진행 중인데,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르면 올해 상반기부터는 은행업권에선 기준이 같아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