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 화폐 투자자가 587만3000명(지난 3일 기준)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까지는 162만6000명에 그쳤는데 올 들어 420만명 넘게 늘었다. 가상 화폐 투자 광풍(狂風)이 불었다고 할 정도인 지난달에만 191만명이 늘었다.

투자 금액은 2018년 1월 이후 127조7000억원이 가상 화폐 거래소에 입금됐다가 그동안 105조원이 출금됐다. 남아있는 투자금은 22조7000억원이다. 587만명이 여전히 투자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1인당 387만원을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가상 화폐 투자자와 투자 금액 통계는 27일 본지가 입수한 금융위원회 자료에 포함된 내용이다. 금융위는 이 자료를 2주 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제출했다. 금융위 공식 집계로 가상 화폐 투자자 수와 투자액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대 가상 화폐 거래소의 2018년 1월 이후 지난 5월 3일까지 거래를 기준으로 한 통계다.

이 자료에는 가상 화폐에 대한 금융 당국의 입장도 포함돼 있다. 금융위는 가상 화폐 투기 과열을 우려하면서도 당분간 추가적인 규제책을 내놓는 데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한 국회 관계자는 “지금처럼 과열돼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규제책을 내놨다가 가상 화폐 가격이 떨어지면 투자자들의 원성이 집중될 수 있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가상 화폐 등) 암호 자산 규모가 급속히 불어나는데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어떤 경로를 따르더라도 금융 시스템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자 수는 작년 10월 이후 매달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10월 가상 화폐 거래소 신규 가입자는 1만3000명이었는데, 11월엔 10만2000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도 1월 36만7000명, 2월 84만9000명, 3월 111만6000명, 4월 191만5000명의 가입자가 새로 거래소에 가입했다. 월별 은행 계좌를 통해 거래소에 입금되는 돈도 덩달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작년 12월 3조9000억원이던 입금액은 지난달엔 33조2000억원으로 9배로 늘었다.

◇금융위, ‘김치 프리미엄' 우려

최근 가상 화폐 가격이 급등한 원인에 대해 정부는 ‘글로벌 유동성 증가’와 ‘호재성 뉴스로 인한 기대감’이라고 분석했다. 호재성 뉴스로는 기관투자자들의 가상 화폐 매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비트코인 투자와 긍정적인 발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관련 ETF 승인 검토, 미국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나스닥 상장 등을 거론했다.

반면 가상 화폐 가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실상 정부 내에선 최근 가격 급등을 가상 화폐 내재 가치와는 무관한 ‘거품’이라고 본 셈이다. 정부는 또 “외국보다 한국에서 가상 화폐 가격이 높은 ‘김치 프리미엄'이 재연되고 투자자, 투자금이 몰리는 등 투기 열풍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가상 화폐 규제 갈피 못 잡은 금융 당국

정부는 국회에 가상 화폐를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방향을 잡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상 화폐를 금융자산으로 볼 것인지 등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7년 관계 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놓고 아직까지 방향성조차 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금융 당국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지금처럼 과열이 됐을 때 규제를 내놓으면 빈틈을 이용한 편법이 판을 칠 수 있다”며 “2018년 이후 작년까지 시장이 진정됐을 때 미리 제도화하고 준비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여전히 금융위가 다른 부처보다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달 범정부 대응을 통해 기획재정부,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단속이나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금융위는 “가상 자산 거래 후 출금 발생 시 금융사가 보다 면밀히 모니터링하게 하겠다”며 한 발 빼는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으로 일부 가상 화폐 거래소의 폐업이 예상된다면서도 국회에 내놓은 대책은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를 통해 이용자들이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는 것에 불과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최근 국내 은행들의 가상 화폐 거래소 계좌 거부 움직임과 해외 ATM 출금 한도 제한은 사실상 금융 당국이 기존 금융권의 규제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제한 것”이라며 “떳떳하지 못한 그림자 규제를 하기보다 투명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