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팔아야 하나요?”

사는 것보다 파는 것이 더 어렵다는 주식. 오르면 오르는 대로 ‘팔까?’하고 고민하고 내리면 내리는 대로 ‘물탈까?’하고 고민하는 게 주식이다.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는 “아이디어가 소진됐을 때가 매도 시점이며, 3분의 1씩 분할 매도하라”고 조언한다. 당초 주식을 매수했을 때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 이유가 사라지면 이벤트는 끝났으니 팔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견기업 오너의 매도 타이밍은 일반인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KPX홀딩스의 최대 주주인 양규모(79) 회장은 이달 13~21일에 걸쳐 약 100억원 어치의 주식을 현금화했다. 당초 19.64%였던 지분율은 16.62%로 낮아졌다. 매도 시점과 처분 단가는 아래 표에 자세히 나와 있다.

지난 21일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KPX홀딩스 공시.

KPX홀딩스는 시가총액 3000억원 정도인 코스피 상장사다. 지난 2006년 KPX케미칼과 KPX화인케미칼 투자사업부문이 분할 합병되면서 설립된 화학 지주회사다. 작년 실적은 매출 9531억원과 영업익 791억원이었다. 올 1분기도 매출 2834억원, 영업이익 170억원으로 선방했다. KPX홀딩스 말고도 그룹 내에 KPX케미칼, KPX생명과학, 진양홀딩스, 진양화학, 진양폴리우레탄 등 상장사가 7곳이나 더 있다.

그런데 최대주주의 100억원 어치 주식 매도가 이뤄지기 이전인 지난 7일, KPX홀딩스는 120억원 어치 자사주 매입 공시를 냈다. 삼성증권과 계약했고,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및 자금 운용의 효율성 제고가 목적이다.

자기주식취득 신탁계약 체결 결정

공시 내용으로 판단하면, 회사가 120억원 어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자사주를 매수하고 있는 기간 중에 최대 주주는 100억원 어치 주식을 팔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해 KPX홀딩스 관계자는 “과거에는 자사주 매입 기간 중 최대 주주가 보유 주식을 매도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내야 했지만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그런 규제는 없어졌다”면서 “최대 주주의 주식 처분 이유는 (회사에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법이나 규정상 제한은 없지만 회사의 자사주 매입 기간에 최대주주가 주식을 판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양 회장의 자사주 처분 평균가는 7만8000원선이었다. KPX홀딩스의 24일 종가는 6만9900원이다. 작년 5월엔 4만4000원 정도에서 거래됐으니 최근 1년간 78% 상승했다. 주력 업종이 화학인데 요즘 경기 회복에 따라 업황이 매우 좋은 데다 그룹 내 자회사들이 여러 테마(화이자 테마주, 서울시장 테마주 등)에 얽히면서 주가가 상승세를 탔다.

그런데 KPX홀딩스는 최대주주 개인의 주식 매도도 그렇지만, 회사의 주식 매매 타이밍도 기막히다.

다음은 지난해 11월 18일 ‘개미들 ‘화이자’ 삼행시 지을 때, 테마주 대주주는 897억 챙겨‘란 제목의 조선일보 온라인 기사다. KPX홀딩스의 자회사인 KPX생명과학이 화이자 테마주로 부각되면서 주가가 급등했을 당시 보도된 내용이다. 기사 보도 이후인 24일에도 대주주(KPX홀딩스)는 135만주(처분단가 2만4434원)를 더 팔아치웠고, 총 1230억원을 현금화했다.

지난해 11월 18일 조선일보 온라인 기사 일부. 당시 최대주주인 KPX홀딩스는 주당 2만7277원에 KPX생명과학 주식을 처분했는데 24일 KPX생명과학 종가는 1만500원이다.

KPX홀딩스의 양규모 회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콜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1985년 재계 7위 그룹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해체됐던 국제그룹의 고(故) 양정모 전 회장이 형이다.

양규모 회장은 1970년대 신발 회사로 유명했던 진양화학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진양화학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80년대 초 부도를 냈는데, 당시 30대였던 양 회장은 은행에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이후 그는 “다시는 부도를 내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년 말 기준 KPX홀딩스의 부채비율은 27%밖에 되지 않는다. 올 1분기 코스피 상장사 부채비율은 118.44%였다.

양 회장이 이끄는 KPX그룹은 공정위의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서 1호 타깃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초 KPX그룹은 장남인 양준영 KPX그룹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16억원대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양규모 KPX홀딩스 회장이 2017년 10월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당시 양 회장은 KPX케미칼의 노조 탄압 의혹과 관련해 국정감사 증인대에 섰다. /연합뉴스